주위에서 만나는 이들이 토마 사도의 심정과 동일해지는 유혹을 받고 있음을 때때로 전해 들으면서, 흡사 내 심정을 들킨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으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내 손으로 그분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만져 보았으면’ 그러면 나는 ‘좀 더 열심히, 좀 더 적극적으로 멋진 투신의 삶을 살텐데’하는 얕은 속셈이 작용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단히 복잡한 세상 그 가운데서도 온갖 관계와 요청의 범람이 유유히 우리 사이를 흘러 빠져나가는 것은 우리 개개인 안에 익혀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조건부 여건’과의 끊임없는 타협 때문임을 꼽을 수 있다.
몸이 건강해지면, 지금의 바쁜 일이 끝나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일이 아니라면, 그 장소가 아니라면, 그 사람만 아니라면, 그 정도의 준비는 되어 있어야만 하는 등등의 조건들로 말미암아 무수히 요청되어지는 과제들을 비껴갈 수 있게 하는 양심적 갈등에의 위로를 받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와 싸움에 쉽사리 벗어날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더 깊어가는 내적 공허를 불러온다.
그러한 조건부 여건들에 오염되지 않으면서 ‘지금의 요청’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고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어느 정도라도 내 삶의 자리에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은 잠자리에서 조금 읽어가던 영적독서의 도움을 통해서이다.
‘화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차이에 끊임없니 주목하면서, 계속 중요한 일을 선택하고 중요한 일의 대상을 결정하여 그에 순종하라고 하는 권고가 바로 그것이다. (「새벽으로 가는 길」).
화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가려내고자 하는 의식은 계속해서 생활 안에 고개 드는 조건부 여건에 대한 유혹을 헤아리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또 다시 토마 사도의 심정을 내 안에서 꺼내보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격려하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받아먹으며 조건 없이 중요한 대상으로 순종할 일을 향해 손을 내민다.
그리고 나직이 읊조린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