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숙소비를 아끼려고 다시 밤차를 타고 스웨덴으로 향했다. 지구 최고의 물가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 스웨덴은 어떤 나라일까. 설렘으로 도착한 그곳은 새벽 한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배낭족들이 붐비는 역 바닥에 주저앉아 핀란드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왠 핀란드 걱정이냐 할지 모르지만 스웨덴에서 핀란드로는 배를 이용하는 방법이 제일 빠르다. 하지만 안내 책자를 보니 유레일패스로는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돈 때문에 핀란드를 포기하느냐 아니면 핀란드 보자고 돈을 왕창 쓰느냐 하는 고민에 휩싸였다.
예약 창구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누군가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기차 안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한국인 여행자였다. 핀란드에서 방금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돈이 넉넉해서 부럽다며 내 신세를 한탄했더니 그 여행자는 “나도 유료인 줄 알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유레일패스가 가능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그 친구에게 배 선착장의 지도까지 도움을 받고 헤어졌다.
신이 나서 짐을 맡긴 후 스톡홀름 시내 구경에 나섰다. 지도는 있었지만 그래도 낯선 곳이라 구분이 안 되어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물을 때마다 너무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지하철을 타고 어렵지 않게 목적지인 시청사에 다다랐다. 이곳은 스톡홀름의 상징 건물로써 성 같은 분위기였다. 1백6m의 전망대가 있는 탑이 있어 스톡홀름시 전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25크로네(약 3천 원) 가량의 어마어마한 입장료를 내고 전망대를 향하여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때는 따로 돈을 더 내야 했기 때문에 가난한 여행자였던 나는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걸어 올라갔던 것이다.
심장이 약해서 산에 오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나는 스톡홀름 시청사 전망대에 올라가다가 죽어서 내려가는 줄 알았다. 가도 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똑같은 모양의 돌계단뿐이니 숨이 턱까지 밀려나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해질 무렵 겨우 하늘이 보였다. 입구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또 다시 철계단을 향하여 짜잔 전망대에 다다랐다.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시내가 모두 한 눈에 보이는 쾌감을 느꼈다.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맞았다. 기분도 좋아졌고 가슴까지 시원해짐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스톡홀름 역사가 시청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는데 아까운 지하철비만 버린 셈이었다. 무식이 죄다.
본관 건물에는 넓은 홀들과 회의장 등이 있었다. 특히 노벨상 축하 만찬이 열리는 블루홀과 무도회가 열리는 2층 황금홀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했다.
무료 가이드들이 붙어서 영어로 설명을 해주었는데 대부분은 알아듣지 못했고 벽의 그림이 모두 모자이크로 되어 있다는 것은 용케도 알아들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정말 아주 세밀한 네모로 모자이크가 돼 있는 것이었다.
구시가 북쪽에 있는 3층 건물이 바로 역대 왕들이 살았다는 왕궁이다. 왕실은 1983년 드로트닝홀름 궁전으로 옮겼다는데 아직도 경비병들이 보였다.
영국 버킹검궁의 위병 교대식만큼은 훨씬 못했지만 이곳에서도 작으나마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위병들의 숫자는 아주 적었는데 관광객의 숫자는 그것의 세 배 가까이 됐으니 쑥스러워진 위병들은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들이었다.
왕궁 남쪽의 대성당은 황실 가족들이 결혼을 하는 전용 결혼식장(?)이라는데 생각보다 조촐해서 그들의 소박함도 엿볼 수 있었다.
아까 여행자가 그려준 지도를 들고 핀란드행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시내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7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스톡홀름의 상징 대청사
106m 높이 전망대 걸어서 올라
노벨상 축하 만찬장 “호화찬란”
발행일1994-01-16 [제1888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