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게는 생명이 담긴 먹거리를, 농민들에겐 농업에 대한 애착과 보람을 선사하는 사람. 서울 방배동본당 황부자(54‧데레사)씨를 두고 주위에서 이렇게 부르고 있다.
쌀 수입 개방으로 더욱 단절될 위기에 처한 농촌과 도회지 소비자들을 잇는 사랑의 가교를 자처한 황부자씨는 지난 91년, 아들의 입시 홍역을 마지막으로 치룬 뒤 남편인 신현식(토마스)씨와 주말여행을 떠났다가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서석본당에 우연히 들린 것이 계기가 돼 농민들과의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됐다.
한 주간 헌금이 총 3만여 원, 수십 명의 신자들과 어렵게 살아가는 최원석 신부와 농민들의 어려움을 눈으로 확인한 황부자씨는 서석본당 농민들이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해 제 값을 받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방배동 본당을 중심으로 유기농산물 사먹기 운동을 벌여왔다.
매장을 꾸미고 종업원을 두면 편리한 줄 알지만 황씨는 농민들과 소비자 모두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무공해 농산물의 중계지로 자신의 집을 선택했다. 물론 무공해 쌀과 현미 찹쌀 채소 고춧가루 계란 된장 감자 등 수십 가지에 달하는 농산물로 집이 시장터를 방불케 만들자 황씨 가족들도 처음에는 반대를 했었지만 이제는 황씨를 돕는 후원자로 이 일을 적극 돕고 있으며 남편은 퇴근 후 손수 배달까지 맡고 있기도 한다.
가족들과 이웃의 도움으로 차츰 황씨가 판매하는 유기농산물이 방배동본당을 비롯 대치동 청담동 개포동 포이동 낙곡동 등으로 확산돼 갔고 현재는 11개 구역에 2백여 명의 회원을 확보할 만큼 큰 규모로 성장하는 결실을 맺고 있다.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환경문제에도 눈을 떠 환경학교를 수료하기도 했던 그는 환경학교 동료들과 힘을 합쳐 구역별 거점을 마련, 현재는 구역 대표를 중심으로 유기농산물 공급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황부자씨를 비롯한 모든 구역 대표들도 유기농산물 판매로 얻어지는 수익금은 없을 뿐 아니라 오로지 봉사활동으로 2백여 회원과 서석본당 농민들을 이어주는 사랑의 끈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황씨는 농민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믿고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수시로 유기농 현장을 방문, 순수한 무공해 농산물로 재배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요즘은 홍천군 서석본당 농민들이 직접 자신의 차로 매주 월요일마다 황씨집을 비롯한 11개 구역 대표들에게 농산물을 나눠주고 있으며 구역 대표들은 물건을 파는 대로 농민들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있다.
“어떤 때는 농산물이 팔리지 않아서 집집마다 다니며 팔기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또 일주일 내내 집안을 비울 수가 없어 외출을 못하는 고역을 겪지만 오히려 기쁨은 갈수록 커져요. 그래서 이 길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희생이 따라야만 값진 봉사가 된다는 황부자씨는 가정부보다 더 꺼칠해진 손등을 비비며 농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맞이에 연일 분주하다.
지난해는 감자만 2백 가마를 판매하느라 짐꾼이 다 됐다는 황부자씨. 그는 아직도 감자가 많이 남아 큰일이라며 감자 팔 궁리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전한다.
어떤 때는 고추장과 된장을 담가 판매하기도 하는 황부자씨는 “농민들의 소득이 많아지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도 유기농산물의 좋은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단지 체면이나 안면 때문에 사 먹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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