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년을 보내면서 하느님께 올린 가장 큰 감사기도는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치러오던 ‘사형 집행’이 실시되지 않았음이다. 전국 교도사목 협의회의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모든 교도사목 회원들이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여온 생명 침해의 아픔과 국가 법 구조의 모순에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기도의 응답은 무엇인가? 이 땅에 가장 버림받은 한 인간의 생명이라 할지라도 가장 존중시되는 사랑의 정의가 실현됨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이웃의 생명을 나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법의 엄정한 판결로 말미암은 사형 집행이 선량한 국민들에 대한 안정 효과와 범죄 유혹을 일시적으로는 줄일지 몰라도 근원적인 사회복지문제의 해결과 사회의 제반 영역에 걸친 인권 존중 사상의 교육 풍토가 깊게 정착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가가 한 흉악한 범죄에 대해 한 개인에게만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한다면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사회 질서 확립이나 도덕성 윤리관을 올바르게 회복하고자 하는 열의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음을 보일 따름이다.
죽은 피해자나 가족들에 대한 보상을 단지 사형이라는 제도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면 그처럼 쉬운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국민들의 분노를 사형이라는 제도로 일시적이나마 잠재우려 한다면 그처럼 야만적인 처사가 어디 있겠는가?
참으로 우리 모두는 겸허케 반성해야 한다.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에 대해 얼마만큼 사회 취업 보장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지,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도 자신의 또 다른 쾌락을 위해 얼마나 쉽게 버리고 있는지, 자기 뱃속에 자라고 있는 어린 생명에 대해 ‘딸이다’하여 아무 죄책감이 없이 죽이고 자신의 안락을 위해 소리 없이 죽이고 있는지, 길 가에 버려진 고아들에 대해 마치 내 자식처럼 안아주고 있는지 등등 국민 모두의 사랑 의식이 넓혀지지 않는 한 이 땅에 사형수는 끊임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형수는 곧 이 땅에 썩은 병폐를 오히려 알려주는 이들이다. 국민 모두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사랑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