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롬으로 돌아오는 실자호 배표를 끊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저쪽 창문으로 방금 투르크에 닿은 실자호가 보였다.
거대한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서 하선하는 사람들이 똑똑히 보였다. 그런데 스톡홀롬에서 잠깐 만났던 한국인 여자 여행자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스톡홀름에서 더 있겠다고 하며 핀란드행을 포기했었는데 어인 일로 한국인들의 무더기에 섞여 내리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일을 넘겨버리고 배 시간이 다 되어서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참 후에 아까 유리 너머로 보았던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르르 이쪽 건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해진 나는 그 여자 여행자를 찾아내어 이유를 붙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의 말이 가관이었다.
“세계 최고의 유람선이 유래일 패스로는 공짜라는데 핀란드 구경은 못하더라도 배는 한 번 타봐야지. 아휴 나는 이 배시간 놓칠까봐 조마조마했네”하는 것이었다.
호화 유람선이 공짜라고 여행은 뒷전에 팽개쳐 두고 공짜 잇속을 챙기다니 같은 한국인이었지만 내가 무안해지고 말았다.
그들의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배 안에서도 이루어졌다. 나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있는 1백 불이 넘는 뷔페를 먹으러 식당으로 몰려갔다 몰려오지를 않나, 배 안에 있는 슈퍼에서 이것저것 사놓기를 하지 않나.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여행자들과 몇 마디 주고받는데 내가 독일행 기차를 예약했다는 말을 듣고는 “돈도 참 많네요 예약도 하면서 다니고…”하며 빈정대는 것이었다. 여행자들의 그런 모습이 우스워서 나도 질세라 배 터지게 뷔페 먹을 돈 있으면 차라리 편하게 앉아 갈 수 있는 자리를 예약도 하고 남는 돈으로 빵 사먹겠다며 빈정거렸다.
여행 도중 흔히 볼 수 있었던 한국인들의 추태는 같은 민족으로서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물론 자기 돈 가지고 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이왕 고생하며 젊음을 확인하러 온 바에는 나름대로의 배낭여행 방법도 터득해가며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후 2시 독일 베를린행 기차를 타려고 스톡홀름의 기차역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예약도 안 했으면 무거운 배낭 짊어지고 고생만 했을 뻔했다.
안내 방송과 함께 기차의 모습이 보이자 앉아있던 여행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올라탈 채비를 했다. 나도 역시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졌는데 이거 웬 걸, 딱 1량의 기차가 덜커덩 하며 우리를 놀리듯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잠시 멍해져 있던 여행자들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박장대소를 하며 웃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은 피부 색깔이나 언어를 떠나서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독일의 국경 말뫼에서 다시 베를린행 기차로 바꾸어 타고 자리를 잡았다. 베를린행 기차는 근래 보기 드문 현대식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현대식 구조 때문에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가 않아서 목뼈가 부러지는 줄 알고 밤새 고생했다.
역사의 도시(?) 베를린에 도착해서 우선 숙소를 잡으려고 전화를 찾아 나섰다. 열흘 가까이 밤차만 이용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어 여행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처럼 무작정 찾아갔다가 낭패를 보면 안 되므로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 묵을 예정이었던 유스호스텔로 전화를 걸었다. 묵을 방이 많이 남아 있으니 걱정 말고 오라는 주인장의 말에 내 이름을 재차 말해 두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유스호스텔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겨우 찾아간 유스호스텔은 청소시간이라며 굳게 문을 닫고 열어주질 않는 것이었다. 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바람은 차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을 했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9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통일의 상징 베를린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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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열차 이용…피로 누적 “파김치
발행일1994-01-30 [제1890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