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겐 체육시간만큼 신나고 흥분되는 날이 없다. 체육시간이 들어있는 날이 휴일이 되면 집에서 뜀박질도 하고 실컷 놀고 와서 하는 말이 따로 있다. “수요일날 체육 못했으니까요 대신 오늘 꼭 해야 해요”
이 시간은 수도복과 머리 수건을 휘날리며 운동장을 달리는 내 모습이 가관이어서 곧잘 지나가던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장학 시찰이 있는 날 체육시간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지만 이미 딴 반에서 강당사용을 하기 때문에 운동장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준비운동으로 공을 밀어내는데 성급한 아이들은 ‘청소시간은 깨끗이’라는 게임을 빨리 시작 않는다고 벌써부터 안달이었다. “수녀님, 선생님 빨리 게임해요”
2열 종대로 서서 양동이가 있는 곳까지 빗자루로 공을 쓸고 가서 양동이에 공을 넣고 돌아오는 게임이다. 드디어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한 교정 안에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을 못할 정도로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봇물 터지듯 응원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공을 쓸며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빨라질수록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마지막 승부 일보 전이었다. 바람이 잔 듯하더니 동쪽 편으로부터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바람에 밀려가면서 응원하던 아이들이 소리쳤다.
“바람아! 불지 마라.”
애원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고정해 놓은 양동이가 때구루루 굴러가지 않는가.
철이는 굴러가는 양동이를 따라 계속 대빗자루로 공을 굴렀다. 이미 백군은 고정된 양동이를 돌아와서 만세를 불렀다. 순진한 철이는 바람 때문에 점점 멀어져가는 양동이를 향해 빗자루 짓을 하며 따라갔다.
“이 바보야 굴러가는 양동이를 따라가면 어떻게 해.” “처음 양동이가 놓은 자리까지만 가면 되지. 그냥 와라 그냥 와.” 철이편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장학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은 철이와 손잡고 요술 양동이처럼 굴러가는 양동이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이었다. 바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승부에도 상관없이 룰에 충실한 철이. 바람 때문이라고 포기할 수도 있는데 끝까지 성실로 도전하는 작은 거인. 한 손에 양동이를 들고 또 한 손에 철이의 손을 잡은 채 돌아왔다.
이 어려운 세상을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철이의 먼 훗날을 보는 듯 철이의 발그레한 얼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