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갈 때마다 생각나는 웃지 못 할 일화 하나가 있다. 듣는 어른들은 눈물이 나도록 폭소를 터뜨리고는 딴 자리에 가서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단서까지 붙였다.
요즈음은 소풍 갈 때 쓰레기 넣을 비닐봉지를 아예 준비해 온다. 각자 자기의 쓰레기를 담아서 집에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어른들은 야외에서 불고기도 구워 먹고 쓰레기도 산에서 소각할 때였다. 나는 처음으로 담임 없는 안식년이라 4·5학년 소풍을 따라간 일이 있었다.
1학년 때 가르쳤던 아이들이라 졸졸 잘 따랐고, 특히 여자 아이들은 더 좋아했다. 신나게 오락도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보물찾기도 했다. 소나무 바위 틈 깊숙이 보물을 숨겨 놓아도 용케 찾아냈다. 1학년 때는 바로 코앞에 놓인 보물 종이도 찾지 못하고 빙빙 돌던 아이들이었다. 점심시간도 보물찾기 오락도 끝나고, 신호에 의해 쓰레기가 손길에 모여졌다.
나는 여자 아이들을 보호하느라고 불이 붙여진 쓰레기 둘레에서 한 발씩 떨어지라고 손짓하면서 점점 산등성이까지 오르게 되었다. 산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약간 겁도 먹으면서…. 그러나 남자 선생님이 대부분이니까 안심이 되었다. 바람도 솔솔 불어 상쾌한 날이었다. 1학년을 데리고 오면 도착시간까지 다칠까 체할까 걱정만 하다가 돌아오는 날이 소풍날이다. 중학년 정도만 되어도 이렇게 마음이 놓이고 여유가 있구나. 생각에도 잠겨보고….
그런데 갑자기 “소방차 나와라. 소방차 나와라”하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더니 불씨가 바람 때문에 다시 붙어 소방차를 부르는가 무심코 뒤쪽을 바라본 순간 기상천외의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게 웬일이야” 남자 아이들이 일렬횡대로 서서 쓰레기가 타고 있는 작은 불길을 향해 자기의 소방호수로 사격을 가하고 있지 않는가? 드디어 불길은 멈추고 쓰레기 잔해는 깨끗이 정리되었다.
“원, 세상에 사람이 소방차라니….”
순진하게도 속은 것이 바보 같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웃지도 못하고 수녀원에 와서야 겨우 폭소를 터뜨렸다. 딴 곳에 가서 그런 말 않기로 한 아이들이 이젠 사회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사건이나 문제점을 막아내는 소방차 노릇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