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침샘암으로 두 차례 수술. 89년 9월 선암으로 폐 절제 수술. 2년간 항암제 투여만 12차례.
이러한 병력을 갖고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다.
7년 6개월째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박인수(라자로·58)씨.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짧지만은 않았던 그 시간이 그에겐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그러기 위해 무언가 할 일을 찾아나서는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87년 6월 3일 병원 측의 권유로 입원, 9시간의 대수술을 받은 그는 웃고는 있지만 울음을 참지 못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서야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처음 주치의로부터 암이란 말을 들었을 때 ‘설마 내가’싶은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리곤 다른 암 환자들은 다 죽어도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6월 9일 박씨는 왼쪽 정강이 밑 신경을 환부에 옮겨 심는 이식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되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도 차츰 생겨났다.
“특히 암환자들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고,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변화될 수 있어요. 암환자라면 누구나 기적을 바라겠지만 바로 이런 작은 변화가 기적이라고 봅니다”
박씨가 투병의 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글 쓰기와 카드 제작. 어릴 적 시인을 꿈꾸기도 했던 그는 최초 암 선고를 받은 87년부터 매일 일기 형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지금 노트 40여권에 달한다. 그곳엔 병실에서, 집에서 매 순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수백 편의 시와 함께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살아있는지 알고 싶어’(어느 하루)라는 시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한 술 식은 밥/검은 미역국에 말아/치미는 꾸역이 무서워 지레 울부짖으며/남처럼 쑤셔넣는다/깊이 빠진 밤 죽는가 싶어 눈 못 감다가/코딱지 씹어보고 발고락 냄새 다시 맡아본다/살아있는지 알고 싶어’.
비슷한 무렵, 무작정 십자가를 그려보고 싶어 시작한 것이 이젠 내다 팔아도 될 만큼 멋진 카드로 변했다. 도안·색칠에서 인쇄까지 박씨 혼자 도맡아 한다. 꽤 정교한 것은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글쓰기든 카드 제작이든 박씨에겐 단순한 하루 일과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일을 통해 하루를 투병하는 것이고, 그만큼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박씨가 만든 카드는 서울 가톨릭 사회복지회의 도움으로 ‘환자 방문용’으로 보급될 예정이다.
항암 치료 끝에 오는 구토와 두통 소변 불리 등 극심한 고통들은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몸서리를 치게 한다.
그러나 박씨에겐 이 모든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탈출구가 있다. “하느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특별한 생각과 은총을 주신다”는 확신과 그것은 바로 “죽는 순간까지 남을 위해 살려는 노력”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박인주씨는 지난해 12월 28일 병원 측으로부터 “현재로서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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