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Q,CQ,CQ HL1AWO, 듣고 계신 분 계시면 응답하십시오.…지금부터 마르코니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제는 「기도생활」입니다. 순서대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가톨릭 아마추어 무선사회 김광석(안드레아·42세·서울 자양2동 본당) 회장은 벌써 4년째 매주 수요일마다 무선통신으로 진행되는 「마르코니 네트」의 키 스테이션, 즉 사회자를 맡아 토론을 진행한다.
그가 시각 장애라는 시련에 부딪치게 된 것은 1977년 말. 당시 연세대 대학원 응용통계학과 마지막 학기를 거의 마치고 좀 더 넓은 학문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자꾸 눈앞이 흐려지고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다. 포도막염이라는 처음 듣는 이름의 병으로 그는 온갖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5년 만에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다.
“밑이 없는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책이나 노트를 펴고 들여다봐도 눈앞은 안개가 낀 듯 뿌옇게 흐려져 내가 맹인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줄 뿐이었지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성껏 키워온 열대어를 들여다보고 또 보면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습니다.”
만사에 자신만만했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쳐 78년 9월 세례를 받고 신앙의 힘을 얻기 시작했다.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다독거리던 그는 성서를 읽고자 가톨릭 맹인선교회를 통해 점자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곳의 맹인들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맹인선교회 내 녹음도서관 초대 관장을 맡으면서 한편 83년부터 무선통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는 일이 큰일이었다. 책을 읽을 수가 없어 봉사자가 녹음해준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면서 내용을 익히고 점자로 요약을 해서 이것을 거의 외우다시피 해 결국 아마추어 무선기사 3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당시 장애인에게는 무선국을 개설해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의 끈질긴 요청에 체신부에서 담당자가 녹음도서관으로 직접 방문, 녹음 편집 등 실무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 84년 4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각 장애인 무선국 허가를 내주었다.
그 후 86년에 2급, 89년에 1급 등 계속해서 자격증을 취득했고 그러는 중에 85년 가톨릭 아마추어 무선사회 창립을 주도 현재 4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김광석씨에게 무선통신만큼 삶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학문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이다. 그는 학교를 떠난 지 무려 15년 만에 응용통계학에서 사회사업학과로 전공을 바꿔 다시 연세대 대학원으로 돌아왔고 현재 5학기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깊이 공부를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일생을 당신 뜻에 맡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라”는 권고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아간다는 그의 말은 그가 극복해야 했던 시련의 무게, 삶과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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