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 나이의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부르는 모습을 보면 얼굴도 모르지만 기억의 저편에서부터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라 옵니다. 그럴 때면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음조차 걷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다섯 살이 되는 해에 양친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로 그 숱한 고생을 참아내고 살아온 김만식씨(토마스·서울 가회동본당·53세)씨는 아직도 어머니의 이름을 남 몰래 부르면서 베갯잇을 적신다.
가회동성당의 청소부 수위 관리인 경비원 복사 종지기 등 그 많은 직책을 수행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할 때면 종지기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김만식씨가 첫 시집 「홀로 핀 들꽃」을 펴낸 데 이어 3월 초에 두 번째 시집인 「땡땡땡 종소리를 들라」(도서출판 요한사)를 펴낸다.
학교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가 결혼 후 부인으로부터 한글을 배워 시인이 되기까지에는 말 못할 아픔과 그만의 노력이 있었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서울로 상경, 기차 사고로 다리를 절단하는 불운을 겪으면서 한때는 자살하기 위해 한강 다리를 찾곤 했다는 김만식씨.
김만식씨는 “가진 것도 없고, 한쪽 다리마저 없는 천애 고아인 내게 시집을 와서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아내를 생각하면 괜히 눈물이 나곤 한다”말하면서 “아내에게 글공부를 배운 지 3년째 되던 해 한글을 떠듬떠듬 읽을 수 읽게 되었다”며 “그 당시는 정말 온통 내 세상인 것 같았다”며 활짝 웃었다.
서른 살의 나이에 한글을 깨우치고, 그 많은 날 밤을 하얗게 세워가며 조심스럽게 써왔던 글을 모아 펴낸 첫 시집 「홀로 핀 들꽃」을 아내에게 바치던 그날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김만식씨는 “하루에 두 번 종을 치는 시간에 내 안에 있는 모든 세파의 앙금들을 털어버린다”며 은은한 종소리처럼 먼 하늘을 바라본다.
그의 첫 시집 「홀로 핀 들꽃」처럼 엄청난 인생을 짊어지고 살아온 김만식씨가 피와 땀을 흘리며, 성당에서 가정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신앙고백의 목소리가 스며있는 시집 「땡땡이 종소리를 들라」에는 청아한 종소리가 담겨 있다.
전문적인 시작을 위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닌 그가 일상 속에서 주마등 같이 스쳐 지나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종소리에 함께 실어 하늘로 하늘로 날려보내고 있는 모습에는 엄숙함이 배여 있다.
김씨는 또 “성당 앞에 있는 출판사에 원고 뭉치를 들고 찾아오는 장애인들이 문전박대 당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접할 때면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여력이 있는 한 자그마한 출판사를 만들어 나와 같은 장애인들이 마음껏 원하는 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생전에 마지막 남은 꿈”이라며 포부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첫 시집을 낸 그가 있기까지 눈물겨운 사랑으로 내조했던 아내 박명숙(실비아·52세)씨에게 바친 김만식씨는 모처럼 남편의 역할을 한 것 같아 마냥 즐거워한다.
아내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베갯잇을 적신 그 많은 날을 가슴 깊숙이 묻고 살아온 시인 김만식씨. 시인의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그의 손으로 울려 퍼지는 사랑의 종소리가 어둡고 찌든 삶을 살아가는 세인들의 가슴에 은은히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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