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행복인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새삼스럽게 파랑새를 쫓는 소년처럼 행복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의 속물작용으로 해석되기가 쉽다.
그러나 지난 설날, 본당 사목위원들과 함께 사제관으로 신부님을 찾아뵙고 돌아와서 나는 잠자리에 누운 채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행복의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플라톤은 인간의 행복은 타인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였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으며 또 타인에게 행복을 주려고 스스로 노력한 만큼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며 타인을 행복되게 해줄 수 있도록 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칭해도 좋다고 말한 바가 있다.
플라톤의 이 같은 행복에 대한 지론은 행복은 곧 사랑이 원천임을 이원적 차원에서 요약해 말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플라톤의 말을 공식화하면〈행복=사랑〉으로 성립된다.
사랑을 베푸는 삶이 곧 행복한 사람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그리스도는 행복한 분이셨다.
역사상 그리스도만큼 인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한 분이 또 있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최선의 사랑의 삶의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의 결론을 내렸다.
사제관에서 돌아온 그날 밤, 나는 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했다. 흥분된 감정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것은 샘처럼 솟는 행복한 감정을 통해 오랜만에 나의 삶에도 향기가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자아에의 자각이라던가. 자아에 대한 발견은 가치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남은 여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천주님을 향해 감사를 드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어른들께 설날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50년이 가까이 되는 셈이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는 사이에 세뱃돈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설날에 세뱃돈을 받아보았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세뱃돈이었다.
사목위원 모두가 신부님과 맞절을 한 후에 신부님이 주신 세뱃돈은 잔주름 하나 없는 빳빳한 천 원짜리 지폐였다.
이미 은행에서 바꿔다 놓은 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씩 세뱃돈으로 주었다.
"자, 회장님은 두 장입니다"
야고보 주임 신부님은 모든 사목위원에게 한 장씩 주면서 회장이라는 직분을 이유 삼아 보너스로 천 원 한 장을 더 얹어 주었었다.
20여명이나 되는 사목위원에게 세뱃돈을 나누어 주신 다음, 세뱃돈이 든 흰 봉투는 주임 신부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안드레아 신부님에게로 넘어갔다.
안드레아 신부님도 역시 천 원씩 세뱃돈을 나누어 주시고 나에게는 보너스까지 합쳐 지폐 두 장을 주셨다.
내가 이날 밤, 흥분하고 행복을 느꼈다는 것은 바로 이 세뱃돈 때문이다.
다시금 내가 유년기를 거쳐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년이 된 기분이 아니라 소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늙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었다.
초로의 연륜을 까맣게 잊고 소년이 되어졌다는 것이 잠시 동안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이 행복했던 시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신부님, 다가올 다음 해의 설날에도 지폐 아닌 동전 한 닢이라도 좋습니다. 꼭 세뱃돈을 주십시오. 이것은 저에게 행복을 주시는 겁니다. 저를 소년으로 바꿔놓는 행복입니다. 늙었다는 슬픔에서 해방을 가져다 주시는 일입니다. 다시금 소년이 된 기쁨을 만끽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천금을 얻은 세속적인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임을 신부님도 백발이 되시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도 행복하실 것입니다. 플라톤의 말처럼 저에게 행복을 주셨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 신부님의 행복은 세뱃돈을 받고 행복했던 자보다 더 행복할 것이다.
행복한 사람이란, 남을 행복되게 해준 사람임을 플라톤은 지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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