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방을 잡아 짐을 풀었다. 거의 저녁때라서 뭘 좀 사 먹을까 하고 카운터로 내려가 직원에게 슈퍼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자 카운터 직원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요"
아차차, 유럽의 모든 도시들은 일요일날 수퍼마켓의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 쥐며 하는 수 없이 유스호스텔 내에 마련되어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이것저것을 빼어 먹는 수밖에 없었다. 값은 비쌌지만 그래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음 날은 본격적으로 베를린 구경에 나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날 이후로 나는 베를린이 천국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베를린 중앙역을 당당하게 나서는 내 앞으로 보여지는 것은 암담한 현실이었다. 생계를 이어 나가려고 암거래를 하는 사람들, 마약인지 술인지에 취해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휘청이는 사람들, 길을 물어도 퉁명스레 독일어로 대답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오래 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구경거리가 될 만큼도 안 남아 있었고 빌헬름성당은 썰렁하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이 가난한 여행자를 기쁘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알디 슈퍼의 출현이었다.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유럽에서도 알디 슈퍼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팔고 있었다. 하루 세 끼 먹을 돈으로 이 알디슈퍼에서는 일 주일치 식량을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것 저것 당분간 먹을 식량을 배낭 가득 사 가지고 나오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독일에서의 다음 여행지인 쾰른으로 가기 위해 기차 시간을 맞추려고 역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렸다.
주위에는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을 구경하다가 입이 심심해서 배낭 속에 숨겨둔 김을 꺼내어 먹었다. 그러자 내 옆의 프랑스 여행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네들은 무언지도 모를 시커머죽죽한 것을 이상한 동양 여자애는 맛있다고 쩝쩝대며 먹으니 말이다. 하도 애처롭게 쳐다보길래 반 쪽을 찢어서 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마구 씹어 먹는 것이었다.
그걸 다 먹고 나더니 이제는 아예 또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큰 맘 먹고 한 장을 주니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 프랑스 친구는 이게 뭔데 이렇게 맛있냐는 것이었다.
이건 김이라는 한국 음식인데 바다 아래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김 베리 굿"이라며 웃었다.
나는 눈 딱 감고 한 뭉치를 그 친구에게 선물했는레 프랑스 친구는 사양도 안 하고 덥썩 받는다. 오는 정이 고우면 가는 정도 곱다고 그 친구는 자기 배낭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더니 나에게 건네는 것이다. 바로 프랑스제 비누였다. 우리는 서로의 기차 시간 때문에 헤어져야 했지만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쾰른으로 가는 기차는 비교적 한산했다. 쾰른에는 다음 날 새벽에야 도착하므로 나는 배낭에 있는 침낭을 끄집어 내어 덮고 잠을 잘 채비를 했다.
유럽의 기차는 컴파트먼트(6~8인실 칸막이방) 식으로 되어 있었다. 또 의자도 밤에는 앞으로 빼내어 침대 바닥으로 만들 수 있었으므로 비싼 숙소를 잡지 못하는 배낭족들에게는 아주 좋은 침실이었다.
문제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고 말았다. 음냐음냐 꿈까지 꿔가면서 열심히 자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눈을 떴다. 기차는 어느 역에 정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잠결에 부스스 눈을 떠서 창 밖의 역 표지판을 보는 순간 나는 심장마비에 걸리는 줄 알았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10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서글픈 베를린 장벽
상상 속 「베를린 천국」현실은 암담
김 맛본 프랑스 여행자 "김 베리 굿"
발행일1994-03-20 [제1897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