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 한 시인과 대학생 아들이 함께 걸은 거리다. 30일간 부자(父子)는 마른 목을 축이며 걷고 또 걸었다. 졸리면 쉬어 가고, 힘이 나면 걸어가며 그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끈끈한 유대를 형성했다. 순례길을 걸을수록, 삶은 더 단단해지고 기쁨은 더욱 커졌다. 그들이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이르렀을 때, 마침내 ‘순례는 끝이 없다’는 깨달음에 다다랐다.
그들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 순례 길이 나 혼자라면 이렇게까지 가치 있고 행복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추한다. 저자이며 아들인 조범수(요한) 작가는 아버지 조철규(야고보) 시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빠가 이야기했었잖아요. 이 길이 끝나면 다음 순례는 로마 교황청에서 이곳 산티아고까지 다시 걸으시겠어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그럼! 순례는 끝이 없다”고 답한다. 그는 가장 확실한 휴식은 순례와 도전에 있다며 누구나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책 「아빠는 함께 걷자 했고 우리는 산티아고로 갔다」는 부자가 걸었던 순례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오롯이 담겼다. 소통하는데 어색했던 그들이 함께 걸으며 부딪히기도 하고 때론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들이 고스란히 수록됐다. 순례를 하며 만났던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도 다채롭게 담겼다.
아버지와 아들은 순례를 하면서 소통과 사랑 그리고 평화를 느낀다. 부자는 이번 순례가 끝이 아니기에 새로운 순례를 다짐했다. 로마 교황청에서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걷는 순례다.
예정된 순례는 화해와 평화, 진리를 향한 발걸음이다. 이는 ‘바티칸’이 갖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1989년 12월 1일 당시 소련 최고회의 의장이던 고르바초프가 바티칸을 방문했다. 그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다. 이 만남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물론 세계정세에 평화의 바람을 불어오는 데 역할을 했다. 아울러 현재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민족이 하나의 깃발 아래 올림픽에 참가해 보기 좋았다”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처럼 바티칸은 ‘평화’와 ‘소통’, ‘사랑’과 떼놓을 수 없다.
새로운 순례를 꿈꾸는 부자는 평화의 상징인 바티칸을 새로운 출발지로 정했다. 그들의 순례기는 우리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별한 꾸밈이나 큰 서사 없이도 일상이 갖는 소중함을 일깨운다. 자연스러운 삶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신앙 역시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상념 없이 걸으며 자신에게 집중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순례로 우리를 이끈다.
아버지는 부록에서 “순례길을 걸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위로부터 받은 사랑과 지지, 우리가 받은 소중한 선물과 기회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한 자기 봉헌, 삶이 주는 의미와 기쁨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새로운 순례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삶이 지치고 힘들고, ‘나’와 ‘우리’에 관해 마주하고 싶은 이들은 책을 통해 새로운 길 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마음과 몸이 무거워지면 다시 순례길에 오를 것이다. 내 생활에 잡다한 일들이 이끼처럼 돋아나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떠나라고 소리치는 그날이 오면 나는 또 주저없이 순례길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