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의 성인 탄생 10주년을 맞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탄생 2백주년을 기념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 천주교 2백주년 기념, 시성 10주년을 맞는 오늘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 내형적으로 많은 변화 속에서 성장해왔다. 순교의 시대는 지나가고 증거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던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시성 10주년을 맞으면서 지난 10년간 한국 교회를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을 일일 것이다. 본보는 무수한 순교자들이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거룩한 땅을 기도하는 순례자로 밟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아울러 1백3명의 성인을 탄생시킴으로써 다시 없는 영광의 땅으로 빛나게 했던 그날의 감격을 되살리면서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분야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교회는 어떤 정신을 바탕으로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왔는가. 과연 우리 교회는 증거하는 교회인가, 우리는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 총론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성공리에 끝마친 한국 주교단은 1백3위 시성이 이 땅의 복음화 구현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 역사적 사건임을 전 신자들에게 자각케 하는 공동 사목교서를 84년 12월 2일 대림 첫 주일에 발표했다.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민족 복음화」라는 2천년대 사목 과제를 떠안고 다방면으로 급속한 성장을 보여왔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급속한 대내외적 성장은 순교의 보혈로 이어진 신앙의 유산을 계승하고 순교 선열들의 복음적 삶을 구현, 발전시켜 나겠다는 신자들의 열정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2백주년 폐막미사 강론에서『우리가 특별히 남들보다 뛰어나게 한 일도 없고, 복음도 전한 일도 없으며 전교가 잘 되도록 연구하고 정책을 세우는 일도 따로 없었는데 이렇게 믿는 이의 수가 날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감사해하면서도『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동포들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지상 과제이며 2백주년을 기린 궁극 목적도 여기에 있음』을 강조했다.
바로 일련의 2백주년 기념행사와 1백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의 궁극적인 뜻은「이 땅의 복음화」임을 천명하고 요약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2백주년의 평가는 10년 전에 마감한 역사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 민족의 복음화 진척 여부에 따라 달라져야 하며 앞으로의 교계 사목 방향도 2백주년 계승 정신에 따라 설정되고 조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 땅의 복음화의 성공과 실패의 책임은 한국 천주교회 신자 개개인 모두가 져야 할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주교회의는 2백주년이 끝난 다음해 85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냉담자 증가에 따른 반성해야 할 문제도 있지만 2백주년 이후 대체적으로 신자들의 선교정신이 앙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치 이러한 주교단의 평가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지난 10년간의 교세 성장은 괄목할 정도로 높은 신장세를 보여왔다.
2백주년 이후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가장 발전한 것을 꼽으라 한다면 많은 신자들이『교계 사목 행정 조직의 체계화』라고 지적할 것이다.
교계 사목 행정 조직의 개편과 정비는 교세 신장에 따른 필수적인 조치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2백주년 이후 교계 사목 행정 조직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해왔다.
우선 주교회의의 경우 2백주년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회보」를 발간, 비밀주의가 아닌 2백주년 전반의 진척 사항을 상세히 신자들에게 소개, 교계 사목의 쇄신된 새로운 면을 선보였다.
주교회의는 85년 춘계 정총을 통해 2백주년 기념 사목회의 제안을 심의하고 그 대부분의 제안들이 건설적이며 한국 교회 발전에 필요한 것임을 인정하고 실천 가능한 것부터 국제화시켜 나가기로 하고「한국 교회 지도서」(Di-rectorium Commune)에 수렴키로 했다.
또한 2백주년 사목 의안을 계기로 요청됐던 사목 행정 조직 개편은 85년 종합적이고도 전문적인 선교 전략의 수립과 강력한 추진을 위해「주교회의 선교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가속화됐다.
이후 주교회의 전국위원회는 △가정사목위원회 △교회법위원회 △교육위원회 △문화위원회 △북한선교위원회 △천주교 용어위원회가 신설돼 현재 총 16개 전국위원회로 발전돼왔다.
교구 행정 조직도 각 교구별로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2백주년을 계기로 84년 경우「사무처」「사무국」「홍보국」정도에 불과하던 것이「관리국」「교육국」「성소국」등을 신설, 사목 행정을 더욱 체계화했다.
또한 교구별 총대리제 운영과 함께 각 국 산하「가정사목부」「사회사업부」와 같은 부서 임무를 세분화해 사목 행정을 전문화했다. 따라서 교구 사목 행정을 관할하는 사제 수도 상임위원을 제외하고도 각 국장 신부와 차장 신부 등이 배속돼 그 기능과 역할이 점차 고유화되고 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 금년 최창무 보좌주교 서품을 계기로 교구 사목과 효율적인 교구 업무 추진을 위해「분야별 주교 대리제」를 주요 골자로 하는 대폭적인 교구 사목 행정 조직 개편을 단행해 사목 행정 전담에 따른 전문화 추세가 더욱 뚜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계제도 역시 89년 10월 23일 군종교구가 설정돼 기존의 14개 교구에서 15개 교구로 늘었다. 특히 병영의 복음화를 책임 맡은 특수사목 교구신설은 전국적이고도 전문적인 선교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2백주년의 사목 의안과 맞아떨어지는 교계 행정 개편이란 점에서 주목할 만한다.
고위 성직자의 경질도 지난 10년 사이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활발했다.
우선 한국인 최초 주교였던 노기남 대주교와 대구대교구 서정길 대주교, 전주교구장 김재덕 주교, 마산교구장 장병화 주교가 선종했고 이문희 대주교를 비롯, 김옥균, 강우일, 정명조, 이병호, 박석희, 김지석, 최창무, 서정덕 주교가 새로이 성성 94년 4월 현재 추기경 1명, 대주교 2명, 주교 18명이 한국 교계를 대표하고 있다.
2백주년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대 사회 참여운동을 통해 신뢰성과 정신적 권위를 심어줬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주교회의는 85년 7월 5일 처음으로 맞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순교자 대축일에「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하여」란 제하의 사회 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사회 정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환기시키면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희생되고,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하여 복음에 비추어 각별한 관심과 노력 방향을 천명하자고 전 국민에게 촉구했다.
이에 앞서 윤공희 대주교 당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은 84년 12월 9일 제3회 인권주일을 맞아「생존권의 보장을 위하여」란 제하의 담화문을 발표하고『2백주년을 맞이한 오늘, 이 땅에서의 천주교 수용이 인간의 존엄과 인간 평등 사상의 전파와 확립이라는 역동적 사건이었음에 유의하면서, 보편적 교회의 진리를 터득하고 수용한 순교 선열들의 뜻을 오늘의 이 땅에 다시 펴고자 하는 바이다』고 천명했다.
이는 한국 천주교회의 대 사회운동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전파한 한국 순교 선열들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바로 그 정신을 계승하는 것임을 극명하게 증거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의 인권문제, 특히 생존권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누구를 비판하고 질타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에 입각해 국가와 사회 공동체 성원 전체의 화해와 일치를 촉구하는 호소와 소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대 사회 참여운동은 이후 민주 헌법 쟁취를 위한 노력, 학원 안정법 시행 반대 투쟁, KBS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민주화 기도 운동 등의 전개를 통해 1987년에는 6ㆍ29 선언을 유도해내는 업적을 쌓았다.
한국 천주교회의 이 같은 사회 참여운동은 교회 내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회의 지식인과 민중들에게 천주교에 대한 호감과 관심을 증대시켜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국민들로부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1982년 12월에「북한선교분과」가 설치됐었다. 이 기구는 1985년 가을 한국 주교회의 산하「북한선교위원회」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북한선교위원회에서는 88년 봄「통일사목연구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을「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하는 데 합의하고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 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동의는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 주교단에서 민족 통일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한 바는 없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재일치를 위해 더욱 큰 역할을 담당해 주기를 많은 이들로 부터 요청 받고 있다고 하겠다.
■ 전망
1985년 2월 15~16일 안양 라자로 마을 아론의 집에서는 2백주년 기념 주교위원회 위원장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한 4개 집행위원회 위원들이 참석, 2백주년을 마감하는 최종 평가회가 있었다.
여기서 집행위원들은 2백주년 기념에 있어 제일 중요한 정신운동이 왜 부진했는가를 전체적으로 반성하고『2백주년 정신운동은 적어도 한 세대 이상 지속돼야 할 것』이라면서『미래를 위해 특정 수도회나 단체를 중심으로 정신운동을 지속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었다.
2백주년 집행위원들은 또한「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큰 만큼 교회는 냉혹한 자기 비판을 통해 쇄신을 실행하고, 전 교회 차원에서 선교 3백년대의 명확하고도 구체적인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2백주년 최종 종합 평가회 결과에 따르면 앞에서 지적됐듯이 한국 사회의 복음화 관건은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오늘날 신앙인들이 얼마 만큼, 어떻게 계승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민족 복음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열성적인 평신도 활동과 순교정신이 오늘날의 복음화 운동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교계 지도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교회 발전을 위한 평신도의 역할은 오늘날 더욱 긴급히 요청되고 있는 과제 중의 하나이다. 교회 발전에 평신도들이 기여하기 위해선 과거 순교 선조들의 그것처럼 적절한 영성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교회 안에서의 자기 역할과 영성 심화에 노력함으로써 2백주년 계승사업과 복음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기획 - 2백주년과 103위 시성 그후 10년을 진단한다] 1. 순교신앙 계승이 복음화의 관건
교세 성장 괄목 조직체계 발전
증거하는 삶과 정신운동 부족
발행일1994-05-01 [제1903호,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