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취리히대학에 당도했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해 있으면서도 커다란 호수와 시골처럼 무성한 나무와 들판으로 학교의 조경을 꾸며놓은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대학이 대학생만의 공간이 아니라 국민학생의 자연학습장도 되었고 가족 나들이의 공간도 된다는 것이 특이했다.
다음날은 젊은 여인이란 뜻을 가진 융프라우에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새벽 어슴프레 눈을 떠보니 천둥 번개가 치고 세상은 온통 암흑세계인 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하는 수 없이 융프라우를 포기하고 비옷을 단단히 걸쳐 입고 스위스 제2의 도시인 루쩨른으로 향했다. 루쩨른은 취리히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관광객들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고 우리에게도 유명한 목조 다리 카펠교가 있는 곳이다.
안내책을 들추어 보면 비엔나역에는 한국인 아저씨가 매일 새벽마다 나와서 한국 여행자들을 인도해주고 있다고 적혀 있다. 그래서 나는 오스트리아에 가면 우선 고생은 안 하겠구나 싶었다.
나 이 외에 몇몇 한국 여행자들이 비엔나 기차역에서 그 한국인을 따라 그가 경영하는 서울식당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에는 외국에 나와서 고생하는 젊은 여행자들을 너무도 잘 이해해서 이런 친절을 베푸는구나 생각해서 참 좋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닌 것이다. 약간의 상술이 복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여행자가 밥만 먹고 돈을 안 낸 모양인데 진정 여행자를 도우려 한 의도였다면 한 그릇쯤은 친절로 베풀 수도 있겠건만 끝까지 캐물어서 돈을 받아내는 모습이나 소개로 간 숙소가 무술도장의 바닥이었고 더군다나 수용 인원을 초과해 받는 바람에 자리마저 서로 쟁탈해야 하는 모습이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벼룩시장엘 갔었다. 유럽에 온 후로는 처음 경험해 보는 벼룩시장이라 잔뜩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벼룩시장의 정다움도 모두 사라져버린 것일까. 물건은 분명 벼룩시장에 어울리는 헌 물건이었는데 값은 백화점 마냥 비싸게 매겨져 있었다. 몇 가지 욕심 나는 물건들이 있었지만 값이 워낙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돌아서야 했다.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12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현지 한인 친절은 상술 “실망”
벼룩시장 헌 물건 너무 비싸
발행일1994-05-01 [제1903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