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4~14장 :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들로 이루어진 충실한 주님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징벌(4, 1~13, 16)과 이스라엘이 다시 꽃피우리라는 구원에 대한 약속(14, 1~9)을 내포한 설교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의 주제는 선민을 위해 돌보시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과 은총이다. 세분하여 보면 4, 1~5, 7은 대부분 불신에 대한 비난들로『이스라엘 백성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께서 이땅 주민들을 걸어 논고를 펴신다』는 법정서문 형태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제관들과 지도자들의 무책임과 그들의 죄악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하면서『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느님을 받아주는 자도 또한 없다』고 고발하는 가운데 그 부패된 사회상을 엿보게하고 있다.
5, 8~6, 6까지는 심판에 대한 경고에 따라 백성의 탄식이 뒤따르고 이어서 하느님의 응답이 있다. 심판에 관한 호된 경고의 외침으로 출발하여 백성의 탄식이 이어진다. 하느님의 분노에 충격을 받은 백성들은『어서 야훼께 돌아가자. 그분은 우리를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주시고 우리를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라면서 이제 회개의 준비를 갖추고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호의를 보여주시기를 기대한다(6, 1~3).
그러나 야훼의 응답은 자비를 예시하면서도『에브라임아 너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너의 사랑은 아침안개 같구나,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같구나, 그래서 나는 예언자를 시켜 너희를 찍어 쓰러뜨리고…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전에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다오』(6, 4~6)라고하여 심판의 재앙을 피할 수 없음을 예고한다.
6, 7~9, 9도 역시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그의 종교관에서 기인한 왕권에 대한 정치비판이 신랄하다. 정치가들은 부정직하고 사기를 밥먹듯 쳐 권모술수만을 일삼는 자들이다. 어느 세기를 막론하고 이기심에 눈이 어두운 자들의 소행은 이렇게 비록 왕들을 세우고 무너뜨려고 하고 있으나 야훼께서는 모르는 바로서 왕위 찬탈에 따른 유혈의 음모를 공격한다. 또한 그들이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유한한 것에 의지해 보아야 말짱 헛것이라고 맹타하는 속에서 우상숭배로 이끄는 외국과의 동맹을 징계한다. 따라서 북쪽 왕국의 군주제도가 그 원초적인 사명을 저버렸음을 질책한다. 이렇게 정치적인 혼란이 우상숭배의 길을 터놓았다고 예리하게 파헤친다.
9, 10~13, 16은 하나의 역사적 반성들로 이루어진 설교부분이다. 야훼께 대한 순수한 신앙의 오염은 호세아가 가장 염려한 바로서 가나안의 관습과 종교사상은 대중의 종교를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의 유일신관을 잠식시킨다. 따라서 우리의 예언자 호세아는 하느님을 황소의 형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을 맹렬히 공격한다. 그리고 타락일로에있는 경신례는 음탕하기 이를데 없을 뿐만 아니라 역겹게도 형식주의로 가득찼다고 질타한다.
사제들은 본연의 사명을 버리고 대중이 가진 육정과 야합하여 그들의 신앙이「바알화된 야훼」인지 아니면「바알」자신들인지 구별하기 힘들도록 한다.
특히 11, 1~9절은 이 부분에서 중심을 이룬다. 이러한 결과로 이끌어온 역사의 배경에 대해 심판을 선언한다. 그 역사는 출애급때에 이스라엘을 선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사랑의 줄로 이끌었다』(4절)는 말속에하느님의 사랑이 표출되어 나온다.『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단념할 수 있느냐…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라는 호소속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결코 식어질 수 없음을 호소한다. 이렇듯 애틋한 연민의 정을 보고서 배신한 이스라엘인들 어찌 외면하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13장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부족으로서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의 배신행위를 단죄하고 이 배신행위 때문에 종말이 예고된다.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서 당대자기 민족들에게 호소력있게 외친다.
14, 1~9절은 구원에 관한 약속으로 예레미아서 못지않게 속죄와 통회의 시로서 희망적인 결론을 짓고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은 지혜문학에서 빌려온 문체로, 지혜문학이 성서에 들어온 시대를 반영해 주고있다.
인간의 회개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수없는 것으로, 재앙을 통해 정화된 이스라엘이 겸허해진 후에 은혜로서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억압하는 자들의 압제하에서, 야훼의 정의로우심과 사랑에 힘입을 때 희망적인 미래가 펼쳐진다는 고무적인 성격을 드러내는데 그 당대보다 후대에 예언자의 진실성이 평가되어진다. 그렇다면 호세아 예언 역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외쳐지는 소리가 아닐까! 만약 오늘날과 같은 불신과 퇴폐풍조 그리고 부정축재가 만연할뿐 아니라 저소득층의 아우성을 호세아 예언자가 듣는다면 어떻게 외칠까! 호세아의 신앙을 전수받은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야훼의 순수 신앙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이 시대의 증인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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