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활은 급격히 어려워져갔습니다. 모든 피아노사가 어려운 형편이므로 직장은 어렵게 되고 다른 어떤 기회도 얻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독립 광고로 피아노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우리의 수입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던 중에도 남편은「성가대 조직」에 열성적이었습니다. 3주일 내에 조직이 되고 훈련을 끝냈습니다. 미사 중에 직접 성가를 부르게 된 것은 그 다음 주부터였습니다. 나는 성악 전공이었으므로 우리 부부는 곧 좋은 봉사처를 가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성가대를 지휘했던 남편은 성가대의 운영 고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고방식은 간단해졌습니다.『출석에 대하여 걱정하지 말라. 두 명이 오면 지휘하고, 한 명이 오면 같이 뚜엣을 한다. 출석은 각자의 신앙에 맡겨라. 노력은 주님의 손길을 끌어온다』 그 후 확고한 단원들이 형성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성가대에도 만나는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공동체는「은혜의 밤」을 개최하였고, 3일 동안 서로 기쁘게 성령 안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문제는 찬양의 활동 안으로 내리는 하느님의 만나 중 나의 몫인 한 오멜을 어떻게 거두어 올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겸손과 기도를 그 방법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나의 신앙 경험인 이 글을 쓰면서『만일 내가 이 글을 쓰는 지점이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을 끝내는 지점처럼 멋있는 지점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현재 지점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헤매는 지점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고생길이 가나안 땅으로 연결된 은혜임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때로는 충만한 기쁨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나에게는 은총의 연속 외에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물질로 인한 고충도 그리고 병고와 가난의 고통도 은총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 순간도 광야에서 헤매며 만나를 먹는 은총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외면하고 있을 때 그 분은 우리를 어떻게 불러주시는가』
나의 생활은 이 불러주심의 연속에서 지나온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곡식을 주시고 부르시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신 은혜를 외면하고 있을때 곡식을 거두시고, 경고로써 부르시었습니다. 다시 얼굴을 돌려 주님께 향했을 때, 주님께서는 전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주여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양귀숙씨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의 장진주(소피아)씨의「사람이 무엇이기에」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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