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중앙 묘지는 착잡한 나의 심정을 충분히 메꾸어 주고도 남을 만큼 좋은 장소였다.
일찍이 비엔나는 음악이 발달한 도시기에 이곳에서 활약한 사람들은 거의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다.
하이든이라든가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왈츠의 왕인 요한 스트라우스에서 20세기에는 마알러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가운데의 넓은 길을 중심으로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그 틈틈이로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들이 있는데 차라리 시민공원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비엔나 시민들이 얼마 만큼 음악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은 다음 이야기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의 폭격으로 국회 의사당과 오페라 극장이 파괴됐는데 복원과정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복원하느냐는 투표를 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만장일치로 오페라극장의 승리였던 것이다.
빈 서부역에서 가까운 성 스테판 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이다. 1백37미터나 되는 이 성당은 쾰른 대성당의 3배 가까운 3백43개의 계단이 있어 73미터 높이까지 오를 수 있다.
유럽의 여행에 있어서 성당과 박물관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여행을 할까 싶을 만큼 거쳐야 하는 예의 그것들이 너무도 많다.
비엔나를 떠나기 전에 꼭 한 번은 북한에서 경영한다는「평양식당」을 가보고 싶었다. 그곳은 서울식당보다 가격도 훨씬 쌌고 한국 배낭족들이 한 번쯤 가서 밥을 먹고 싶어하던 명소 아닌(?) 명소였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청소 중이니 두 시간 후에나 영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태리로 떠나는 기차시간 때문에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햄버거로 배를 채우고 멀어져 가는 비엔나에게 안녕을 고해야 했다.
우물쭈물하다 기차시간 놓칠까 봐 부리나케 빈 서부역으로 향했다. 겨우 시간 안에 도착해서 로마행 기차가 서는 플랫폼을 열심히 찾았다. 아무래도 나타나질 않아서 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여기는 서부역이라서 로마행은 출발하지 않습니다. 중앙역으로 가세요』
유럽의 도시에는 기차역이 두세 개가 보통이라 시간표 옆에 작게 적혀 있는 역 이름을 잘 보고 출발했어야 했는데 덜렁된 게 죄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지만 중앙역까지 날아간다 해도 이미 기차는 놓치고 말았을 시간이었다.
고민고민을 하다가 기차 시간표를 다시 이리저리 짜맞추어 결국은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기로 했다. 그 후 베네치아에서 숙소 거리인 로마로 향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베네치아행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긴 했지만 영 불안했다. 왜냐하면 여행 내내 기차로 침입해드는 이태리 집시들의 이야기를 귀 빠지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차를 샅샅이 뒤져서 한 명의 한국인 여자 여행자를 찾아내었다. 혼자보단 둘이가 훨씬 나을 거라면서 서로를 위로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미리 준비해온 쇠사슬로 문고리를 꽁꽁 동여맸고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리고 연습장에다『들어오기 전에는 꼭 노크를 하세요』라고 써서 유리문에 붙이기까지 했다.
옆방 외국 여행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더러는 앞에서 배꼽을 쥐었고 더러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을 하다가 자기네 방으로 들어가서 뒹굴며 웃어대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아무리 배짱이 크다지만 도둑이 무섭지도 않나 생각했었다.
얼마쯤을 잤을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부시시 눈을 뜨니 검표원이 도끼눈을 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13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음악의 도시「비엔나」
유명인 잠든「중앙묘지」는 공원
「평양식당」 한국 배낭족에 인기
발행일1994-05-22 [제1906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