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위 한국 순교 성인중 5명의 이름만 나열해보라면 3백만 한국천주교회 신자중 몇명이 답할 수 있을까?
성 안드레아 김대건, 성 바오로 정하상?
한국 순교 성인 개개인의 행적은 고사하고 대다수 신자들이 순교 성인 5병의 이름도 채 답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솔직한 면모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순교성인 김대건신부와 정하상 바오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몇 안되는 사목자와 평신도들을 제외하고는 이 두분에 대한 영성과 행적을 정확히 알고 있는 신자들은 드물 것이다. 「순교자의 교회」「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창립한 평신도의 교회」「한국에서 시성식을 개최하고 세계 4번째로 많은 성인을 배출한 영광의 교회」로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있는 한국천주교회의 내면적 실상은 이토록 빈약하다.
한국순교성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혹 『우째 이런 일이』하고 통탄하고 있지나 않을는지.
한국천주교회의 이같은 「외화내빈」(外華內貧) 이중적 실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신학자들은 한마디로 「토착화 작업」 즉 「문화 복음화사업」이 미진한데 있다고 잘라 말한다.
2백주년 기념사업의 목적이 바로 「한국 문화의 복음화」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호기를 놓쳤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문화 복음화의 의미
2백주년 기념사업의 근간이 되는 「문화 복음화」의 중요성에 대해 2백주년 사목교서 「이땅에 빛을」은 함축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목교서 「이땅에 빛을」은 『2백주년을 위해 2백주년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 곧 교회의 3세기를 위해 이때를 기리며 또한 그 세기를 향하여 밝히는 등불이 되기 위해 「이땅에 빛을」을 목표로 내건 것』이라고 2백주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백주년 사목교서는 또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선열들의 순교정신과 믿음, 복음에 투철한 삶』이라고 강조하고 『누구나 이를 본받아 참으로 새로운 믿음과 정신으로 다시 나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2백주년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역시 「이땅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와 문화간의 긴밀한 대화」를 역설했다.
84년 5월5일 서강대학교에서 강연한 교황은 『한국의 첫 그리스도인들은 민중의 사고방식과 정서 풍토에 복음을 강생시키려는 문화적 주체성을 갖고 토착화에 주력했던 모범적인 신앙인들이었다』고 추앙하고 『인간을 옹호하는 문화 복음화에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참해야할 것』임을 강조했다.
2백주년이 내세운「순교정신 계승」과 교황이 역설한 「문화 복음화」는 「인간을 위하고 옹호한다」는 차원에서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다소 사고(思考)의 비약은 있지만 오늘날 순교정신의 계승은 바로 「문화복음화」와 「토착화의 진로 모색」과 직결된다 하겠다.
그러므로 북한선교 전례서 개정 표준교리서및 통일성가집, 2백주년 신약성서, 교회사 자료 편찬 한국신학연구원 건립등을 추진한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김남수주교)의 주력사업도 바로 『문화 복음화』를 위한 일련의 진로 모색 과정으로 점철된다.
▲너무도 로마적
한국교회는 교계 제도적으로는 완전한 자치교회로 성장했지만 문화적 측면에서는 아직까지 서구교회의 아류내지는 모방 교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일례로 103위 시성식때의 전례가 지나치게 「로마적」이었다는 당시의 지적을 지금쯤 한번 되짚어 볼만 하겠다.
또 2백주년 기념 「통일성가집」을 만드는 작업 중에 한국 멜로디로 창작된 성가를 찾았지만 별로 구할 수 없었고 2백주년 가톨릭 미술전에도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작품이 희귀했다는 후문이다.
한국 가톨릭 문화란 천주교신앙 도입후 2백여년이라는 역사 과정을 통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이 전통적인 우리 민족 문화를 기반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이루어 놓은 정신적, 물질적 모든 성과를 말한다.
고려대 조광교수는 「한국가톨릭 문화의 특징은 자발성과 고백적 성격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순교를 통해 드러난 고백적 요소와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자발성이 한국 가톨릭 문화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조교수의 이러한 고찰은 교황요한바오로2세의 강론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84년 5월6일 2백주년 전국 사목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여러분의 믿음의 조상은 복음을 자신의 문화와 민족적 주체성안에 토착화 시키려고 훌륭한 노력을 기우렸다.』고 피력하고 『만약 그런 노력을 본받아 꾸준히 이어 나간다면 어김없이 그 주체성 안에서 문화의 복음화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역설했다.
교황의 이러한 연설은 한국천주교회가 민족 복음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한국 문화를 복음화해야 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신앙선조들의 주체적 정신을 계승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울러 교황연설은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추진했던 다양한 문화 복음화 사업은 지속적인 연계성을 추진되어 나가야할 당위성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생활복음화부터
문화 복음화 과정은 행정적인 지시에 따라 일반 본당 수준의 사목 활동이나 교리교육을 봉해 쉽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파악된 문화 실상을 신앙의 안목으로 조명, 그 의미를 규명한 뒤 복음적 생활로 일반 신자들에게 전수돼야 한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고견이다.
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한국 가톨릭 문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민족적 기능」과 「사회복지적 기능」「정의의 기능」「문화의 기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시도하고 있는 문화 복음화를 위한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기 위해선 통일 문제에 대해 평화와 민주의 원칙을 제시하고 사회 복지적 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한 정의 구현이 필수조건이라는게 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신학자들은 또 이미 2백주년때 교황이 천명했듯이 한국교회의 문화 복음화는 신앙선조들의 주체적 순교정신을 바탕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문화 복음화를 위한 신학적 접근 보다 교회 내부를 토착화 할 수 있는 생활의 복음화가 요청된다.
일차적으로 한국천주교회 신자개개인이 스스로 순교정신에 젖어들수 있도록하는 순교성인을 주제로한 다양한 형태의 전기문학(傳記文學)이 많이 출간되야 하겠다.
이를 위해 교회는 전기문학가 양성에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며 평신도 문학가들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성인들의 생애를 소설, 전기화하는데 열정을 쏟아야겠다.
또 「가톨릭 연극제」「가톨릭 국악제」「가톨릭 미술대전」과 같은 대중 문화 행사 및 공간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가톨릭 문화에 쉽게 관심을 가지고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생명수호운동」과 같은 국민계몽운동에 적극적인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
현대의 교회는 사회 안에서의 「정의적」「복지적」기능을 지속시켜 나갈 때만이 일반인들에게 관심을 이끌수 있음을 사목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문화를 복음화한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룩할 수 있는 것이아니다.
그러나 유구한 세월을 통해 이룩될 이 방대한 사업도 「시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2백년전 창립 신앙선조들은 「주교요지」「천주공경가」「상재상서」「천주가사」등과 같은 학문적 고백과 음악으로 전통문화를 복음화할 줄 알았다. 그들이 시도한 복음화 작업은 위대하면서도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을 자기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그러나 신앙선조들은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줄 안 복음화된 분들이었다.
시성 10주년을 보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내외적으로 교회 발전과 쇠퇴의 기로에서 발전과 성숙을 향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역사적 순간을 맞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결단은 「문화의 복음화」에 촛점이 맞춰져야함을 사목자들은 직시해야 한다.
2백주년 기념사업 위원회가 주창한대로 한국 가톨릭 문화의 주체성을 살려나가는 길이 민족의 복음화를 이룩하고 세계 교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진정한 자립 교회의 면모를 드러내는 첨병임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다.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일지
시성시복 추진 등 6대 사업 주관「기념문화사업위」로 개명되기도
2백주년 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김남수 주교ㆍ이하 기념사업위)는 1980년 7월 18일 2백주년 전국 준비위원회에서 계획 초안에 따라 82년 9월 2일 2백주년 기념 주교위원회로부터 운영 세칙을 인준 받고 당해 10월 28일 사무국을 개설한 2백주년 4개 위원회 중 하나이다.
기념사업위는 신앙 선조들의 시성시복 추진을 비롯한 6대 주관사업 및 공인사업 장려사업 등 3개 분야로 대별, 사업을 추진해왔다.
기념사업위는 2백주년 기념 주교위원회 4개 집행 부서 가운데 유일하게 그 명칭이 두 차례나 개명된 위원회다.
당초「기념사업」이란 명칭으로 출범한 기념사업위는「기념문화사업」으로 일차 개명됐다가 다시「기념사업」으로 환원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는 기념사업 분야의 사업 계획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내용의 축소, 전환에 따른 것으로 사업 내용이 문화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규정되면서「기념사업위원회」로 고착됐다.
명칭의 변화에서 잘 나타나듯 기념사업위가 주관한 사업은「시성시복 추진」「통일 성가집 편찬」「성서번역」「교회사 자료 정리」「맹인 무료 개안 수술」「북한 선교」등으로 점철됐다.
이 중 기념사업위는 2백주년 폐막과 함께 한국 교회 창립 선조 시성시복 추진사업을 주교회의 전례위원회로, 성서 번역사업은 성서위원회로 이관하고 해체됐다.
기념사업위가 2백주년 기념행사 동안 완료한 사업으로는 103위 시성을 비롯, 창립 선조 시성시복 추진 착수, 103위 성인 자료 편찬, 한국 교회 창립사 자료 편찬 착수, 통일 성가집 편찬 완료, 북선사업 계획서 초안 완료, 맹인 개안수술 완료, 103위 성인 표준 영정 착수 등을 꼽을 수 있다.
◆2백주년 기념사업 위원장 김남수 주교 - “성인 유해 연고지 분산 필요”
“성인 개별 현양 위해 절대적 무명 순교자에 관심 가질 때
『순교자 현양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 위해선 우선 서울과 수원 등 경기 일대에 집중, 안장돼 있는 103위 성인 유해를 전국의 각 연고지별로 분산시켜 성인 개개인에 대한 교구민들의 공경심을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2백주년 기념사업 위원장이었던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는 순교자 현양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한 방편으로 103위 성인의 연고지별 현양사업을 제안했다.
전교회 차원에서 103위 성인을 비롯한 순교자 현양사업을 주관하고 순교 성인 개개인에 대한 영성 심화운동과 현양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서울, 경기 일대에 집중돼 있는 순교 성인들의 유해를 출신지와 지방 연고지에 분산시켜 그 지역 신자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김 주교의 주장이다.
일례로 대구대교구 교구민들이 매년 거행하고 있는 성 이윤일(요한) 현양제가 그것이다. 대구대교구가 수원교구의 양해하에 연고지 순교 성인인 이윤일 요한의 유해를 이장, 대구 관덕정에 모시고 대구대교구 제2주보로 지정, 매년 그분의 현양제를 봉헌하고 있는 것이 모범적인 성인 공경의 한 방법임을 김 주교는 강조했다.
김 주교는 그래서 연고지 교구의 요청이 온다면 수원교구 내에 안장돼 있는 성인들의 유해를 이장해 줄 용의가 있음을 피력했다.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시성식을 한국에 유치하는 데 직접적인 공로를 세웠던 김 주교는 창립 선조들의 시복시성운동을 강력히 제안했다.
2백주년 기념사업 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창립 선조 98위 시성 시복자 명단을 작성, 이들의 시성시복운동을 전개했던 김 주교는『한국 교회 창립 선조들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도 이들의 시성 시복은 꼭 성사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2백주년 당시 창립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누누이 강조한 교황의 강론 내용을 인용하며 이들의 시성시복운동의 당위성을 설명한 김 주교는 초교구적 순교자 신심운동과 아울러 교구별 창립 선조 옹립운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순교자 현양운동은 순교자 개개인의 그 신심과 삶을 본받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 김 주교는『103위 한국 순교 성인뿐 아니라 무명 순교자들의 삶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누구 하나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 - 2백주년과 103위 시성 그후 10년을 진단한다] 4. 2백주년 기념사업과 문화 복음화
한국 교회 문화의 특징은 “자발성”
민족 정서 맞는 문화 창출 미진
사회 정의ㆍ복지 노력 지속 필요
발행일1994-05-22 [제1906호,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