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풍족하지 못할 때가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유한 지금보다 성당 짓기는 훨씬 수월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려워도 내 성당을 갖겠다는 신자들의 정성은 대단했지요』
40여년의 사제생활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성당 신축에 헌신한 서울 잠원동본당 장대익(루도비코ㆍ72) 신부는 정확하게 브라질에서의 이민주택 1백50채를 짓기 시작한 이후 34년간을 성당 신축에 꼬박 매달린 셈이다.
그동안 장대익 신부가 신축한 성당은 후암동성당을 비롯 상도동성당 종로성당 등 3개 성당과 대방동성당 토목공사、잠원동본당 교육관、브라질에서의 이민주택 1백50채 등에 달한다.
사제 중 가장 많은 성당 건물을 신축한 것으로 알려진 장 신부는 본당 부임지마다 성당을 짓는 일과 본당 사목을 한꺼번에 부여 받은 복(?)이 많은 사람으로 통한다.
『성당을 꼭 짓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성당을 짓다 보니 가장 많은 성당을 신축한 신부로 알려진 것 같아요』
도면은 물론 시멘트 강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건물 신축에「반도사」가 된 장 신부가 성당을 짓기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실용성과 편리성、안전성이다.
기도하는 집으로써 우선 손색이 없어야 하고 신자들이 성당 공간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장 신부가 갖고 있는 성당 건립 철학이다.
많은 본당을 지어온 만큼 장대익 신부가 겪은 고충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종로본당을 건립할 때는 서울 시내 안 다닌 본당이 없을 정도로 본당을 찾아다니며 구걸 아닌 구걸을 해야 했다는 장 신부는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대방동성당 축대 붕괴 사고로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이기지 못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골목길과 두 채의 가옥을 덮친 축대 붕괴 사고 때는 붕괴된 축대 안에 사람이 깔려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어 뼈가 마르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단 한 사람의 사고자도 없었지요』
34년 동안 계속돼온 건물 신축 기간 중 단 한 건의 인사 사고도 없었던 것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 아니겠느냐고 장대익 신부는 반문했다.
44년 전인 1950년에 사제품을 받아 평양교구 진남포본당에 부임을 받았지만 6ㆍ25 전쟁으로 부임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월남하는 불운을 겪은 평양교구 출신의 장대익 신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남포성당 건립과 초임지에서의 미사 봉헌을 소원으로 간직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