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명창이자 참 광대인 박동진(79) 선생. 국악의 해 5월, 전국 곳곳에서 국악의 발전을 위한 각종 행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에게는 이런 현상이 그리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는 듯하다.
『국악의 해라고 해서 정부에서 여러 가지 행사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국악을 위한 것인지는 의아스럽습니다. 겉치레의 일회적인 행사들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교육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초동교회 장로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박동진 선생은 특히 구약과 신약성서의 내용을 판소리로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70년 당시 KBS 극작가 고 주태익 선생이 판소리 사설체로 쓴「예수전」에 손수 곡을 붙였고 이어「팔려간 요셉」,「모세전」등 성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 발표했다.
『요즘 우리 가락과 우리 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가톨릭에서도 국악미사를 봉헌하는 교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도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도 마찬가지로 더 많은 교회에서 우리 고유한 가락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5세 대전중학교 3학년 때 장남으로 집안의 모든 기대를 안고 있던 그는 홀연히 찾아온 소리바람을 따라 험난한 외길인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떠나온 소리길은 68년 국립국악원 강당에서「흥보가」를 무려 5시간에 걸쳐 완창함으로써 세인의 관심을 끌기까지 애환과 질곡의 세월이었다. 그는 다시「춘향가」8시간에 이어「심청가」,「적벽가」,「수궁가」를 차례로 완창하고「배비장타령」,「장끼타령」등 사설만 남고 소리가 끊긴 것으로 알려진 노래들을 찾아 다시 가사와 곡을 붙여 발표했다.
전래된 판소리 열두 마당을 복원하고 열 마당을 창작 판소리를 발표함으로써 국악계의 인정과 함께 국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는 73년에 이르러「적벽가」로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됐다.
국악 대중화와 관련해 그는『단순히 서양음악에 우리 가락을 일부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된 우리 가락, 노래의「맛」을 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학교 교육에서부터 서양음악만 가르치지 말고 국악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팔순을 앞둔 박동진 선생은 슬하에 삼형제를 두고 있다. 이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악을 하길 원했으나 소리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잘 아는 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아직 조막만한 손녀들에게라도 소리를 가르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그리고 그는 스승이 그랬듯이 현재 문하에 둔 6명의 제자들이 국악에 대한 애정을 변치 않고 간직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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