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연구발표회 "우리시대 신앙인, 장면 박사 시복시성을”
정치인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삶 집중 조명
“5·16 쿠데타 실각, 무력충돌 대신 평화 선택”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 장면 박사. 2월 22일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산하 재속프란치스칸연구회 주최로 그리스도인 장면 박사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운석(雲石) 장면(요한, 1899~1966) 박사가 종교인으로서 살아온 삶이 재조명됐다.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산하 재속프란치스칸연구회(회장 손진욱)는 2월 2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층 강당에서 ‘교회의 사람 장면’을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번 발표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장면 박사의 시복시성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하는 자리로 더욱 관심을 모았다.
발제자로 나선 홍성군(바오로) 창원대 교수는 “장면 박사는 평생을 한국교회 안에서 산 교회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장면 박사는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파견돼 유엔이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는데 힘을 실었으며, 일제 해방 뒤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 초대 주미대사와 부통령, 그리고 국무총리를 지낸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그의 신앙적 여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이 있다. 그는 1921년 미국 유학 당시 한국 신자로는 처음으로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고, 1939년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가 설립되자 초대 회장을 맡는 등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또 교회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용산 신학교 교사, 동성상업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홍 교수는 장면 박사의 제자였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빌어 “장면 박사는 한 인간으로서 신자로서 또한 교육자와 정치인으로서 진실하고 거룩한 삶을 사셨다”면서 “장면 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장면 박사가 1961년 5·16 쿠데타로 실각한 것은 “그가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군인들 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프란치스코의 제자로서 평화를 선택하며 ‘정치가로서의 치욕’을 감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연구발표회에 참가한 운석장면기념사업회 한홍순 이사장은 1966년 장면 박사가 선종했을 당시 연도를 바친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한국교회의 큰 별 장면 박사가 시복시성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한 회장은 “장면 박사의 시복시성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의 노력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1999년 8월 27일 서울 혜화동성당에서 봉헌된 장면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에서 “오랜 세월이 필요하고 힘든 일이겠지만, 장면 총리의 시복시성 운동 전개는 고려해볼 만 하다”면서 그의 시복시성 운동 전개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와 운석장면기념사업회는 현재 장면 박사의 시복시성을 위한 학술연구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날 발표회에는 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출신인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운석장면기념사업회 여규태·손병두·최홍준 이사, 한국재속프란치스코회 손진욱 회장과 회원 등이 참석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