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검사하게 문을 열라며 소리를 지르는데 나는 얼떨결에 여권만 달랑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문을 열라며 화를 냈다. 나는 그제서야 놀라 문을 열었다.
『문을 절대 잠그지 마세요. 열어 놓으세요. 안 그러면 벌금을 물려요』
화난 검표원의 목소리에 나와 그 친구는 주눅이 든 채 표를 보여주었다.
그 한국인 여행자와 나는 둘이 마주 앉아서 어떤 놈이 이태리행 기차가 위험하니 문을 걸어잠그라고 그랬느냐며 욕을 해대기도 했다. 집시는 커녕 집시 그림자도 내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이태리의 베네치아였다.
듣던 대로 정말 베네치아에는 자동차가 없었고 길을 건너는데도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했다. 또한 택시나 버스 대신 배로서 교통 수단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베네치아의 중심지인 산 마르코 광장까지도 역시 배를 타고 가야 했다. 하지만 배낭족의 신세로 왕복 모두 배를 이용할 돈이 없었기에 갈 때는 지도 한 장 의지한 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배로 다니게 되어 있는 시내를 일일이 다리를 건너가며 찾으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또한 때는 바야흐로 7월 말경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었다.
골목은 또 왜 이리도 많은 것인지 수백여 개의 골목을 빠져나온 끝에 겨우 산마르코 광장을 찾았다.
이곳은 비둘기가 사람을 피하지 않고 어울려 노는 곳으로 관광객들의 유일한 휴식처이기도 하다.
광장 한쪽에는 화려한 비잔틴 양식의 산마르코 성당이 있는데 입장이 가능한 성당 내부를 구경하려고 한 백 미터 줄 서 있는 것을 보니 명동성당도 잘만 하면 세계적인 성당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의 도시라는 것만으로도 베네치아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디. 물이 비록 더럽긴 했어도 말이다.
다시 밤차를 타고 영원한 제국(?) 로마로 향했다. 약간의 긴장도 했었지만 이태리로 입성하던 첫날 검표원에게 망신 당한 걸 생각하면 집시고 뭐고 무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맘 편안히 아무 데나 엎드려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로마로의 입성은 저녁 때가 다 돼서야 가능했다. 워낙 겁을 먹고 있던 상태라 그랬는지 앞이 잘 안 보이는 기분이었다. 역을 나서자마자 몰려드는 호텔 호객꾼들을 뚫고 시내를 나섰지만 난감했다.
길가에서 만난 한국인이 이 저녁에 혼자 숙소 구하기는 힘들고 역의 호객꾼들은 사기꾼이 아니니 믿고 소개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절한 주인을 소개 받아 짐을 풀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로마제국의 구경을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되었다.「영원한 도시」로마에 어울리는 건축물의 대표적인 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과 그 옆에 위치한 콜로세움이었다. 나는 차비를 아끼고자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의 길 찾기는 만만치가 않았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더니 하루 아침에 로마 길을 찾으려니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삼복 더위에 지쳐가고 있을 즈음 커다란 무언가가 눈 앞을 가로막았다. 하하 드디어 콜로세움이었다.
이곳은 원형의 투기장으로 수용 인원 5만의 규모로 맹수와 인간의 싸움을 구경시켰던 곳이다. 또한 폭군 네로에 의한 기독교도의 박해 장소이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기분이 남달랐다. 그들의 핍박 받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14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베네치아와 로마
차 없는 거리 배가 유일한 교통
콜로세움, 핍박 소리 가득한 듯
발행일1994-06-05 [제1908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