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가 2백주년을 맞아 지난 84년 개최했던 사목회의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 하느님 나라를 도래하기 위한 한국 천주교 초유의 사건이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고 선교 3세기를 맞는 한국 천주교회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시작된 사목회의는 1980년 추계 주교회의를 통해 시작되어 전국에서 무수하게 반복되는 회합을 거쳤으며, 의안이 수렴되는 과정 속에는 물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을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이 집약되었다.
한국 천주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인적 자원을 총동원 연구 회합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례 신심운동 지역사목 교리교육 가정사목 특수사목 교회 운영 선교 사회 등 총 12개 의안이 태어났다.
84년 당시 한국 교회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 미래 사목의 비전을 제시하려 했던 사목회의는 하느님 백성으로 일컬어지는 성직자 수도사 평신도 등 7백여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일구어낸 피와 땀의 결실이었다.
사목회의 의안은 사회 조사, 각종 연수회에서 여러 형태의 의견 요청들을 통해 작성됐으며, 교구 차원의 밑뿌리까지 내려가 심의되고 다시 전문위원들에게 그 결과가 통보되어 수렴되는 과정을 4년여 동안 반복, 완성된 한국 천주교회의 보고이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성하의 입석하에 전국 사목회의가 개최되기까지 사목회의 위원회는 각 교구 사목회의와 각 의제별 전문위원(30여명) 회의, 또 의안분과 대의원(70여명) 회의를 거쳐 의견을 수렴하는 등 좀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선교 등 12개 의안 발표
당시 사목회의 위원회 의장 박정일 주교는 지난 84년 11월 30일부터 12월 1일 사목회의 폐회식에서『이 땅의 복음화 3세기를 향한 좌표 설정이 본 사목회의의 목표였다』고 전제하고『사목회의 폐막은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하며 한국 교회는 이제 새로운 세계에로 그 첫 발을 내디뎌야 할 것』이라고 밝혀 2백주년 사목회의의 중요성을 전 교회에 천명한 바 있다.
무수한 인력, 시간을 요구했고 실제로 그 이상의 인력과 노력, 시간을 앗아갔던 사목회의 의안은 의안마다 모두 별도의 제안 사항을 첨부함으로써 의안집 본문과는 별도의 사항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다.
▲별도의 제안 사항 첨부
이 제안들을 살펴보면 사목회의 의안 본문에서 누락됐거나 미처 다루지 못했던 내용, 또는 여러 가지 여건상 본문에서 다루기는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 사항들을 수록한 것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혼자의 종신 부제직 수여문제, 평신도 연구기관 설치, 토착화를 향한 각종 전례 개혁안, 특히 교구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교구 사제들의 교류문제를 제기한 내용들은 사회 현실에 대한 일치된 견해로 복음 안에서 적극적인 대 사회활동을 펴기 위한 사회교리 연구소 설치가 필요하다는 제안과 함께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또「평신도 의안」에는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 사랑에 근거한 진정한 평화·인간화의 사회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쇄신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앙을 이 땅에 뿌리 내리려는 토착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핵심적으로 지적됐었다.
더군다나 한국 교회의 구체적 상황과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면서 새로운 세기를 위한 교회 봉사자로서의 성직자상을 제시하고 있는「성직자 의안」을 비롯 각 의안이 강조하고 있는 사항들이 1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절실히 요청되는 사항들이어서 더욱 이 의안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하고 있다.
사목회의가 폐막된 지 10년이 지난 한국 교회는 이러한 사목회의 정신이 그대로 구현되었다기보다 아직도 교회는 쇄신과 민족 복음화를 위한 정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복음화 위한 정진 필요
사목회의의 의미가 부각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년 전 외적 성장의 호황기를 맞이한 한국 교회는 오늘날 여러 모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10년 전보다 신자 증가율이 눈에 띠게 무뎌지고 있고 교회로부터 가난한 이들, 뜻있는 청년들이 멀어져가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은 날고 대형화 중산층화 되어가고 있고 점차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 현상과 맞물려 교회의 모습 역시 이기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몸체는 날로 커가고 있지만 내면적 성숙이 따라가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은 갈수록 늘기만 하는 사회적 병폐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의 와해,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현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교회, 사회의 복음화라는 대전제를 갖고 수많은 사람들이 야심에 차서 일구어낸 사목회의 의안이 사장되었다는 현실을 그대고 반영하는 것이다.
2천년대 복음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 역시 복음화되지 못한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개인주의, 집단주의로 인해 교회간, 교구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특히 도시교구와 농촌교구 간의 차이가 심각할 정도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교구에서는 날고 심각해져가는 중산층화로 가난한 이들이 교회로 부터 멀어져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해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도·농 교회간의 움직임 역시 생각보다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오히려 도시교구와 지방교구 간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다.
▲본당 비대화 해결 과제
본당 공동체 하나에게 부과되는 신자 수와 사목적 활동의 부담이 커져 사목자들이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어버이로서의 인격적 만남을 갖지 못하고 관리자와 조직의 지휘관으로 변해가고 있다. 또한 본당의 비대화와 공동화로 인해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소속감과 형제적 유대감을 상실하며 수많은 영세자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빠른(?) 냉담자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또 이러한 공동체의 비대화는 신앙생활을 조직적인 행사 중심, 형식적인 전례 중심 차원으로 갈수록 외향화되고 있고 신앙의 내용과 현실의 삶이 유리되어 교회의 신앙은 사회의 복음적 변화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게 오늘날 사목자들은 물론 신앙인들 전체의 고민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한국 교회는 10년 전에 개최됐었던 사목회의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2천년대 복음화 운동 역시 사목회의 의안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공동체 운동, 도농 직거래, 성직자 납세 등 최근 교회의 움직임 역시 이미 사목회의 의안에서 제안된 내용들이었듯이 사목회의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는 것은 재론할 여지도 없다.
▲사회 변화 대응력 부족
사목회의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누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보다 이제부터라도 사목회의의 교회사적 민족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이 회의의 의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날 신앙인들은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2천년대 복음화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의 친구가 되려는 교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이들은 2백주년 사목회의 의안의 내용들을 수용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이 의안의 정신과 방향을 오늘날 교회 현실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는『10년이 지난 오늘 한국 교회는 변화된 시대 상황에서 새로운 사목회의의 개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점차적으로 각 교구로 확산되고 있는 2천년대 복음화 운동에 사목회의 정신이 구현되도록 노력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2백주년 사목회의 일지
198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주교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사목회의가 시작된다. 80년 12월 28일 간담회를 시작으로 81년 2월 의제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까지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진지하게 한 자리에 마주했다.
▲3백여 의안 중 12개 의제 선정
1981년 가을 주교회의 정기총회까지 의제준비위원회는 전국 각 교구, 수도회, 단체들을 상대로 2백주년 사목회의 의제를 수렴, 3백여 개의 의안 중 12개의 의제를 선정 총회를 통해 승인 받았다.
1981년 12원 주교회의는 12개 의제에 대한 의안 준비작업을 위해 각 의안에 대한 담당자를 임명하고 다음해인 1982년 1월 의안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1982년 1월 의안준비위 구성
이후 1983년 3월 1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우이동 명상의 집에서 개최된 제1차 교구 대표자 연수회에는 각 교구장을 비롯 각 교구 사목회의 대표 42명, 의안준비위원회 25명,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대표 1명 등 총 80여명이 모였다. 이 회의에서 의안준비위원회는 각 분과마다 10회에서 15회의 회의를 거쳐 마련한 12개 의안 중 평신도 성직자 전례 사회 수도자 교리교육 의안을 포함한 7개의 의안을 발표했다.
83년 6월 27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될 제2차 연수회를 통해 가정사목 특수사목 지역사목 교회 운영 등 나머지 7개 의안(초안)을 발표했다.
▲한국 교회 석학들 피땀의 결실
1983년 3월부터 12월까지 각 교구 사목회의를 통해 논의된 내용들은 전국 사목회의 사무국에 보내 의안에 반영하는 등 사목회의는 준비과정부터 한국 교회 전체에서의 석학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성하의 입석하에 드디어 사목회의가 개최됐다. 한국 천주교회 초유의 사건이었던 2백주년 사목회의는 회의 개막까지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됐다. 선교 3세기의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되는 시대적 상황에 올바로 대처하기 위해 내로라 하는 선학들이 총동원되어 만들어낸 2백주년 사목회의 의안이 이렇게 해서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됐다.
▲전국 교회 총괄하는 의견 수렴
1984년 11월 31일부터 12월 1일 서울 가톨릭의대에서 개최된 전국 사목회의에서는 그동안 정지된 의안의 찬반 의견을 묻고, 각 교구 차원과 수도단체, 평신도단체 등에 의해 심의된 의안에 대한 의견을 수렵했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 초유의 사건이었던 2백주년 사목회의는 주교단과 전국 사목회의에 참석한 전국 대의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그리고 정신분과위원회, 사업위원회 등에서 파견된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폐막 장엄미사로 폐회됐다.
[특별기획 - 2백주년과 103위 시성 그후 10년을 진단한다] 5. 2백주년 사목회의
복음화 3세기 향한 방향타
의안 정신 구현 노력 미흡 사장상태
시대 요구 부응한 현실화 방안 시급
본당 비대화·이기주의·공동체의식 붕괴 등 선결과제 산적
발행일1994-06-05 [제1908호,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