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가기 위해서는 동유럽을 통과해 기차로 가는 것을 제외하면 브린디시라는 항구도시에서 그리스 측의 항구인 파트라스까지 배를 타고 가야만 했다.
로마에서 밤차를 타고 브린디시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30분. 그리스로 가려는 배낭족들로 기차역은 붐비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이겨내며 부두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디서 표를 받고 어디서 출국심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안내 책자에는 2층에서 패스와 승선권을 바꾸라고 적혀 있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티켓 사무실은 보이지를 않았다.
한 시간을 빙빙 돌다가 경찰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래로 내려가서 길가에 있는 두 배 회사의 사무실에서 티켓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그리스행 배표을 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 안내 책자만 믿고 있다가 폭삭 망하고 말았다.
그때 한 남미계 여자가 배낭을 질질 끌며 내 옆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이름은 요란다. 올해 나이 23세의 멕시코 여자였다.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서로 말이 통해서 요란다는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휴 나는 다시는 혼자 여행 안 올 꺼야.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어』하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투덜대다가는 내가 많은 나라들을 혼자 여행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것이었다.
요란다는 나와는 다른 저녁 8시 배였다. 그녀는 아쉬워하면서 그리스에서 자기가 묵을 호텔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더니 꼭 다시 만나기를 원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는 떠났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참 재미 있는 친구였는데….
다음에 멕시코에 오면 자기한테 꽉 연락하라며 다정하게 대해주던 요란다. 멕시코는 아름다운 도시니까 내가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먼저 가서 밝히고 있을 그리스가 정말 한 발짝 다가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스행 배 안으로 들어서니 간단한 입국심사와 함께 나를 비롯한 배낭 여행자들은 갑판으로 안내되었다.
이윽고 동양인 여행자들의 무리가 우르르 들어와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은 홍콩인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고향이 중국이라고 하자 그들은 동지 만났다는 듯이 즐거워하는데 그들 덕분에 열 시간이 넘는 배 여행이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배가 파트라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40분 파트라스발 아테네행 기차는 7시 30분이 막차였다. 하는 수 없이 돈도 아낄 겸 노숙을 하기로 했다.
중동 여행을 시작한 후로 처음 해보는 노숙이라 겁도 났지만 다른 외국인 배낭 여행자들도 많았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별을 지붕 삼아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아테네에는 아침 9시쯤에 도착했다. 역에 내려서는 여행자 안내소가 있는 신타그마광장까지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행군을 해야 했다. 말이 행군이었지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1 시간여를 걸었으니 하늘이 노랗게 될 정도였다.
안내소에서 소개 받은 유스호스텔은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 20여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짐을 풀고 다시 간신히 몸을 추스려 구경을 나섰다. 한 번에 7백 드라크마나 하는 버스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좀 미안한 일이기는 했지만 무임승차를 했다. 양심상 좀 마음에 걸렸지만 배낭여행을 하자니 어쩔 수가 없었다.
시내로 나와 우선은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아크로폴리스는 일요일에는 무료 개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장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먼 발치서 다른 여행자의 망원렌즈를 빌려 관찰을 하고 제우스 신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16 - 이탈리아~그리스
수다쟁이 멕시코 여인 “인상적”
여행비 아끼려 노숙 무임승차
발행일1994-07-03 [제1912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