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 신전은 그리스를 숭배한 로마 황제 아드리아누스가 재건한 것의 폐허로서 15개의 돌기둥은 높이가 20미터나 된다. 이것은 원래 1백4개나 되었는데 원래의 크기를 상상해 본다면 엄청난 것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흔적들은 그리스의 최성기를 방불케 하기로 유명하다.
제우스 신전의 근처에는 최초의 근대 올림픽이 열렸다는 올림픽 경기장이 있었다. 담홍색 대리석으로 지은 이 경기장에서 1896년 처음으로 올림픽이 행해졌다고 한다. 그 역사의 현장에 내가 와 있다니 그날의 벅찬 함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경기장의 한쪽에는 올림픽을 개최했던 나라들과 연도들이 하얀 대리석에 쓰여져 있었다. 맨 밑줄에는 자랑스럽게도「1988 SEOUL」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이었다. 일본이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 괜시리 자존심이 상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의 이름을 보니 너무도 반가웠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이집트행 비행표를 알아보러 시내로 나갔다. 어제도 표를 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오늘은 일찍 서둘러야 했다.
『한 달 후까지 모두 예약이 돼 있는데요 어쩌지요?』
『예? 그럼 이스라엘로 가는 노선은 자리가 있나요?』
『그쪽은 항공비가 엄청 비싸요』
나는 힘없이 여행사를 돌아나왔다. 근처의 여행사는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가보았다. 자리도 자리였지만 값이 엄청나서 포기해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경로를 터키로 바꾸어야 했다.
그리스에는 더 이상 머물 수 없었으므로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정을 내린 후에는 오늘 무료로 개방되는 아크로폴리스로 향했다.
그리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가는 인류 최대의 문화유산의 하나로 손 꼽히는 곳으로 돌문명의 대표작으로 여겨지고 있는 곳이다.
「높은 도시국가」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수호신을 받드는 신전으로서 아테네 시민의 마음에 항상 영향력을 갖고 군림해왔었다고 한다.
터키행 기차는 아침 7시20분 꼭 한대뿐이었다. 적어도 새벽5시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6시가 넘은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행 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빠져나가 시내 여행사를 뒤졌다. 그나마 싼 가격인 1만9천5백 드라크마(6만5천 원)에 배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배 출발시간은 저녁 6시. 아침 11시 밖에 안 되었으니 기다릴 일이 막막했다. 그러나 바로 뒤에 앉아있던 핀란드 친구인 뚜오모와 함께 사귀어서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그는 키부츠에서 일할 생각이라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청년이었다.
이스라엘행이라고는 뭔 놈의 심사가 그리 까다로운지 한 사람씩 붙잡고 족히 한 시간은 질문을 해대는 것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왜 혼자 여행하느냐 직업이 뭐냐 여행비는 어떻게 벌었느냐 이스라엘에 아는 사람도 없다면서 왜 가느냐 여기 올 때까지 누가 너의 배낭을 만진 적이 있느냐…』
급기야는 배낭을 들쳐보라는 것이였다. 그러자 위에서 하나씩 물건을 꺼내며 이거 니꺼 맞니? 처음부터 여기 이렇게 있었니 꼬치꼬치 캐묻는데 두 손을 다 들었다.
갑판으로 올라서니 뚜오모가 먼저 자리를 잡고 나를 불렀다. 난생 처음 갑판에서 3일을 보내야 하는데다 마음 맞는 외국 친구까지 생겼으니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배는 출발시간을 훨씬 넘은 11시에 서서히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저 멀리 점점이 멀어지는 그리스 항구의 화려한 불빛들을 보니 집은 또 왜 이리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계속>
[구미리내의 세계 배낭여행기] 17 유럽, 그 웅대한 역사를 따라 - 그리스 벗어나기
늦잠으로 터키행 차 놓쳐 “암담”
항구의 화려한 불빛 향수
발행일1994-07-17 [제1914호,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