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고잔본당 신자들이 본당 제대 앞에 설치된 봉사신청함에 신청서를 넣고 있다.
“봉사 그만두실 분들은 그만두셔도 됩니다.”
수원교구 고잔본당(주임 현정수 신부)이 12월 3일 대림 제1주일에 본당 내 모든 봉사자들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에 따라 12월 24일을 기점으로 본당사목 위원회와 분과, 소공동체, 제단체를 비롯한 본당의 모든 봉사자들이 활동을 그만둔다. 봉사자 없이 본당을 운영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본당 신자들의 봉사활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대안이어서 눈길을 끈다.
본당은 해마다 연말이면 활동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봉사자들이 생기고 또 봉사를 그만두면서 냉담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때문에 본당 봉사자 운영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 해결책이 바로 모든 봉사자를 그만두게 해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다. 대림 시기를 계기로 모든 봉사 분야를 비우고 신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단체에서 원하는 봉사를 선택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일부 신자들 사이에서는 “봉사자가 모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도 제기됐다. 하지만 제대 앞에 마련한 봉사신청함에는 대림 제2주일을 기준으로 이미 기존 봉사자 수 절반 이상의 신청서가 담겼다. 연임을 하겠다고 하는 봉사자와 아직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는 신자들을 포함하면 거의 기존 봉사자 수에 육박한다. 본당은 내년에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본당 봉사자가 예년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본당이 이렇게 자신있게 봉사자 운영 체계를 바꿀 수 있는 데에는 ‘사도단 양성교육’이 큰 디딤돌이 됐다. 사도단 양성교육은 신자들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도로 양성될 수 있도록 기획한 교육이다. 신자들이 대화와 토론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으로, 이 교육에 참여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고 봉사할 준비를 갖추는데 도움 됐다고 평가한다. 특히 본당은 새 봉사자를 모집한 후에는 개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모임인 기초 셀(Cell)도 운영할 계획이다.
봉사신청함에 신청서를 냈다는 백은주(베로니카)씨는 “(봉사를 그만두라는 말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봉사를 내려놓을 생각을 해보니 오히려 내가 왜 봉사를 하는지, 봉사를 통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