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라고 하면, 미술시간에 소개됐던 여러 작품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들을 배울 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바로 ‘여백의 미’라는 말이다. 그 말처럼 수묵화는 묘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면이 있다. 보면 볼수록 공백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마산교구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 수녀원에서 수도 중인 장요세파 수녀가 「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를 펴냈다. 이 책은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의 작품 99점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고 장 수녀의 예술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장 수녀가 해석의 대상으로 한 작품을 그린 김 화백은 최근 인도 뉴델리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초대 개인전을 개최했다.
장 수녀는 들어가는 말에서 “나의 글 체험은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한다든가 하기보다 그 열기가 향하는 방향을 그대로 쏟아 내놓곤 하는 일종의 영적 체험이 됐다”며 “어느 날 나의 이런 체험들이 고스란히 은유라는 형태로 들어있는 김호석 화백의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화백의 작품에 대해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고난 속에서도 찌부러지지 않는 고귀한 인간의 모습, 분노할 수밖에 없는 정치 풍토와 그 희생자들 그리고 종교적 영적 세계까지 스펙트럼이 넓다고 평했다.

책에 수록된 김호석 화백 작품들.
왼쪽부터 ‘마지막 농부의 얼굴’, ‘물고기는 알고 있다’, ‘분노를 삭이며’. 도서출판 선 제공
글은 자유로우면서도 자연스럽다. 더불어 우리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과감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표지에 삽입된 이미지인 ‘보이르 호수’를 설명하면서 “몽골에 있는 보이르 호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크기다. 그러나 보이르 호수가 크지만 제 나라 몽골도 다 담을 수 없다”며 “사람의 눈은 어디까지 담을 수 있을까? 온 우주를 다 담고도 남을 것이다. 화백이 담고자 하는 호수도 이런 호수가 아닐지”라고 풀어놓는다. 은근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화백의 작품과 편안한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면 작은 미술관을 걷는 느낌도 난다.
장 수녀의 글은 담백한 수묵화처럼 다가가면서도 영성적 존재로서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녹여 써 내려간다. 또 ‘종교’가 닿고자 하는 곳이 ‘예술’이 닿고자 하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종교가 지향하는 비워냄과 맑음은 수묵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이질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화백의 무게감 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 여백을 뚫는 장 수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