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서리쳐지는 참혹한 고통의 시간, 그 끝자락에서도 용서는 가능한가. 그 ‘용서’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가.
평화의 밑거름인 화해, 화해로 나아가는 출발점인 용서의 길을 찾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 이하 민화위)가 주최하고 민화위 부설 평화나눔연구소가 주관해 11월 4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열린 ‘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은 우리 시대가 간절히 바라는 평화의 시원을 돌아보는 장이었다. 한국교회가 한반도 분단의 아픔과 극복의 지혜를 나누기 위해 해외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해 영성적이면서 학술적 성격을 지닌 국제 행사를 연 것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처참한 분쟁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평화의 길을 체득한 남미 교회 지도자들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이 함께해 한반도에서 가능한 화해와 용서의 길을 모색했다.
특히 폭력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남미 교회 지도자들은 한반도에서 일궈갈 수 있는 평화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며 형제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복자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를 도와 군부 독재에 맞섰던 엘살바도르의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주교)은 “진실과 정의가 용서의 전제조건”임을 강조했다. 그는 ‘생명의 길: 화해와 치유’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다운 평화,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실, 정의, 용서에서 눈길을 거둬서는 안 된다”면서 “이를 통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기억들을 정화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전을 경험한 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루 뻬드루 쉐레 추기경은 “용서는 정의의 의무를 져버려서는 안 된다. 용서는 상처 준 이에게 정의를 위한 자신의 몫을 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통적으로 내전이라는 형제 간 극심한 갈등과 이로 인한 상처를 경험한 남미 교회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용서의 길로 나서는 용기만이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라는 더 큰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지혜를 들려줬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