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시절을 두 가지 환경에서 지냈다.
하나는 성당 바로 밑에서의 생활이었고 또 하나는 공소에서의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생활이 모두 나에게는 아주 의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우리 아버님 때문이었다고 본다. 내가 성당 밑에서 살았건, 공소에서 살았건 아버님의 신앙교육은 변함없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민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부터 신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3백20항목으로 되어있는「교리문답」책을 수차례에 걸쳐 외우게 하셨던 것이라든지, 공소예절 예식서가 바뀔 때마다 새로 사다가 우리 이름을 한 권 한 권 뒷장에 크게 써서 나누어 주시고 예절에 관한 연습은 물론 성가연습까지 시켜주신 일이라든지, 어떻게 하든지 우리 가족을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살도록 하려고 애쓰시던 그런 모습들이 지금은 좋은 추억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어디에 살든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매일, 혹은 매주일을 그렇게 살아야만 되는 줄로만 알고 지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신자들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가르쳐야 할 입장이 되고 말았는데, 그럴 때마다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가정방문을 한다든지, 교적을 잠시 뒤적이고 있노라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많이 발견되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아이들을 영세시키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들이며, 이 녀석들이 얼마나 나를 본적이 없으면 인사는커녕 못 볼 것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도망을 간다든지 자기 엄마 등 뒤로 숨어버린다든지 하기가 일쑤다.
그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주일학교 미사는 어린이나 중ㆍ고등학생이 나를 막론하고 교적에 있는 수의 절반도 참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교회의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평범한 것을 다시 한 번 힘차게 추진해 보아야 하겠다. 우리 다같이 힘을 합쳐서 신앙인의 삶을 배우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