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난이의 가방은 신종형 쓰레기 매립장이다. 메고 다니는 쓰레기통이니까. 사탕 껍질 껌 껍질 휴지조각 꾀재재한 체육복 덜그럭대는 도시락 등 너무나도 다양하고 그 냄새 또한 극치이다.
그런 기억속의 순난이가 얼마 전 전화를 했다. 6~7년만인가 보다.
『수녀님 보구 싶어요, 수녀님을 얼마나 찾았다구요 … 』
『너 지금 어디 있니?』하고 물으니 극장 근처 여인숙에서 할머니를 거들며 이 일 저 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고 했다.
『수녀님 공부도 하고 싶어요』『순난이가? 철이 드나부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또 연락해라』하고 수화기를 놓고는 한동안 순난이의 전성기(!)를 떠올려 봤다.
순난이와의 첫 대면.
신입생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에 입실하여 여러가지 전달ㆍ주의사항을 말하고 있는데 계속 등잔 밑에서 부시럭대는 아이, 급기야는 의자와 더불어 옆으로 고꾸라져서 온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고는 혼자 툴툴거리며 일어서던 아이였다.
극도의 정서불안의 증세를 가진 순난이. 그날로 가정방문을 한 나는 못 갈데를 간 것 같고,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두근대는 가슴으로 수녀원에 돌아와 한창 열을 내어 이야기 하던 때가 새삼스럽다.
60명 몫을 혼자 다 치루어 낸 아이, 그래도 눈 뜨면 학교라고 비슬거리며 눈꼽을 떼면서 마지막 황제처럼 교실에 나타나는 순난이.
온 것만도 고맙고 와준 것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혹독하게 치루어 내야 했던 그 한 해의 순간들이였다.
『순난이를 야단치시려면 차라리 절 나무라시지요』그래서 동료 교사들이 나의 눈치까지 보게 했던 순난이.
늘 뭔가 부족해서 슬쩍도 잘하지만 담임수녀 앞에서는 고백성사(!)도 잘 보는 순진한 아이. 가출에 줄행랑에 땡땡이 곡예사의 숨바꼭질을 방불케 했던 순난이가 수녀님이 보고 싶단다. 공부도 하고 싶단다.
언제든 그분의 이름으로 뿌린 씨앗은 열매를 맺고야 만다는 또 하나의 체험이 내게 남는다.
이번 부활절에는 내가 순난이를 찾아 나서야겠다. 순난이가 찾는 그리움과 목마름은 엠마오의 제자가 만날 주님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찾아 나설 순난이가 올해에 엠마오의 길을 함께 걸을 예수님의 제자일지도 모른다.
문득 우리 둘은 한 식탁에서 예수님을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