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홍 몬시뇰=1932년 6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 말크주 산타말가레텐에서 태어나 1956년 6월 사제로 서품된 후 본국에서 15년간을 사목활동에 전념했다.
그뒤에 큰 뜻을 품고 1970년 7월 우리나라에 들어와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사업 및 사회교육사업을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있다.
특히 박기흥 몬시뇰은 건전한 노사관계에서 노동복지가 이룩된다는 신념으로 노동조합관계자들의 교육사업에 정진 지금까지 1만4천여명의 노사원을 교육시켜 노사 분규를 사전예방 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1973년 영남교육원 지도신부 1980년 가톨릭 근로자회관 관장으로 피명된 이래 대통령 표창을 비롯한 여러 수상경력을 가진 박기홍 몬시뇰은 1985년 1월 1일 고위성직자인 몬시뇰에 서임됐다.
■엠마 프라이징거 박사=오스트리아 엡스-트롤 태생. 1961년 4월 입국하여 이 땅의 불우한 나환자와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했다.
또한 엠마 박사의 그같은 나눔의 삶이 사회의 귀감이 되어 각계각층에서 자선봉사단체가 생기게 됐다.
엠마 박사는 1957년 살츠버그간호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부터 1961년까지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대구대교구의 초청으로 내한하였고 현재 가톨릭 피부과 의원장으로 있다.
엠마박사는 그간의 업적으로 1979년 5ㆍ16민족상 본상을 비롯하여 1991년도 보건대상 등 지금까지 70여개의 공공단체로부터 공로패와 감사패를 수상한바 있다.
■옥잉애 원장=1961년 3월 30세 미혼의 몸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이후 지금까지 버림받고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계속해 왔다.
독일태생으로 10년간 사회복지사업의 경험을 풍부히 얻은 옥잉애 원장의 입국동기는 6ㆍ25이후 부모를 잃거나 못먹고 못입는 빈민촌 어린이들을 위한 보육사업에 관심이 깊었던 서정길 대주교의 초청이었다.
1965년 5월에 세운 가톨릭 소화보육원은 대구ㆍ경북지역 탁아소의 효시가 됐다. 이제는 상인동과 대명동에 어린이집을 지어 지역 영세민자녀의 보육사업을 계속 해오고 있는 옥잉애 원장은 두 번의 정부표창을 받았고 현재 가톨릭 소화어린이집 원장과 한국 가톨릭 아동복지협의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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