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성삼위의 생명안에서 정결 가난 순명을 따르는 제자의 삶으로 나를 부르셨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기쁨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나를 부르셨다.『예! 수녀가 되겠습니다. 예수님!』 19년전 첫영성체를 모시던 어느날 얼떨결에 튀어나왔던 철부지의 사랑 고백이었다.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예수님과의 첫번째의 만남. 그 만남은 나의 삶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찮은 자에게 자신을 통채로 내어주시어 한 몸올 이루어 주셨던 그 감격, 황홀함과 설레임, 고마움은 난생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1년이란 긴 갈등과 싸움속에서 지금은 종신서원을 한지 2년이 되어간다. 부모형제들의 극적인 반대에도 굴할줄 몰랐던 것은 성소의 신비였으리라. 결혼을 못하겠어요』라는 나의 주장은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고 착한 딸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선자가 아니었으므로 이러한 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나 또한 그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세상것들은 나를 만족시킬수 없다 는 것과 오직 하느님이 나를 만족시켜 주실수 있는 분임을 깨달은 후 그 누구도 이러한 나를 헤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엄마는 뇌출혈로 대세 받으시고 하느님 품에 안기셨을 때 고통과 슬픔, 아픔은 대단했지만 한편으론 자유로이 내 길을 갈 수 있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어느날 슬픔에 잠기어 성서를 펼쳤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아-얼마나 진리인가! 서로를 사랑하면서 헤어져야 하는 인간의 한계성과 무력함을 깨닫는 순간 벌떡 일어나 수녀원 문을 두드렸다. 아직 엄마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계시는 아버지곁을 떠나야 했던 난 가슴이 찢어질듯 했고 뼈마디마디들은 으스러지는 듯했다. 모든 것은 그 분 만 아실 것이다. 인간은 인위적으로 이러한 신비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한송이의 꽃을 아름다운 가르멜 山에 옮겨심기 위해 우아하고 기품있는 여왕의 꽃인 엄마를 꺾으셔야만했던 하는님의 뜻은… 지금은 아버지마저 하느님 곁으로 가셨고 두 분들은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보시고 언제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며 나의 마음속에 함께 살아계신다.
형제들도 진정으로 이해해주며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내가 수녀원을 찾은 것은 나의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빠질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며 방법일 뿐이다.
처음 전교가르멜에 입회했을 때 두 분의 스페인, 두 분의 필리핀 수녀님들과 우리 4명의 한국 청원자들로 가정과 같이 시작하는 작은 공동체였다.
국제적이라 언어 문화 사상의 차이는 엇갈렸지만 하나이신 깊고 심오한 하느님의 사랑안으로 키워주었고 공동체생활이란 신비를 체험해 나아갔다. 우리 수녀회의 카리스마인 관상과 사도직의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하느님 사랑의 열정과 교회사람의 열정가이셨던 창립자 신부님의 딸로 나를 받아들여주신 하느님께 그리고 수녀회 총장수녀님께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한국진출을 위해 그리고 나를 키워주시느라 고생 많으셨던 장상수녀님들께 고마운 마음은 특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