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서부산업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애월읍 무수천을 지나 우측편으로「형제의 집」(북제주군 애월읍 광령1리)이라는 조그마한 표시판이 눈에 띈다. 이곳이「억척 아줌마」로 소문난 김순덕(마리아ㆍ59)씨가 오갈 데 없는 아이들과 함께 10년 넘게 일궈온 희망과 사랑의 둥지다. 형제의 집은 대문이 없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해 문턱을 없앴기 때문이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김순덕씨가 제주에 정착한 것은 29세 되던 64년. 당시 제주에 살고 있던 외가 친척을 방문하러 몇 차례 들른 것이 인연이 되어 그해 이곳으로 아예 옮겨왔다. 작은 사업을 벌여 돈도 꽤 벌었다.
그러나 80년, 새롭게 손을 댄 사업이 실패하면서 김씨는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사업 실패 후 건강까지 극도로 악화돼 간경화에 신경성 장염, 위암까지 겹쳐 서울대, 강남 성모병원 등을 전전하며 좌절과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김씨는 망가진 심신을 안고 83년 10월, 1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새 삶을 시작했다. 6ㆍ25가 나던 해 세례를 받은 김씨는 빈첸시오회 등 교회 봉사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늘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해왔었다.
지금은 건물을 짓느라 없앴으나, 잡초만 무성하던 자리에 돼지우리 4동을 짓고 사육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김씨는 하루 3시간만 자면서 돼지 사육에다 보험모집인, 가전품 외판원, 학습지 보급 등「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다해 모은 돈을 형제의 집에 쏟아넣었다. 악착같이 일한 탓에 보험모집 부문에서는 전국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3년 만에 대지 7백여 평을 구입, 89년 4백여 평 규모의 신축 건물을 완공했다. 차츰 증ㆍ개축에 지금은 수영장과 성당, 피정센터 등을 갖춘 현대식 건물로 발전했다. 김씨는 89년 건물 완공과 함께「유산 받아 잘된 자식 없다」면서 미련 없이 이 집을 제주교구에 기증했다.
지금까지 형제의 집을 거쳐간 이는 58명. 많을 땐 40여 명이 함께 산 적도 있었다. 대개 고교 졸업 후 내보내지만 작년 말 남자 아이들은 모두 다 보내고 현재는 여아 5명과 무의탁 노인 등 9명이 생활하고 있다.
프란치스고 3회 회원이기도 한 김순덕씨에겐 마지막 남은 소원이 한 가지 있다. 부부든 개인이든 신자들이 모여 함께 봉사하고 기도하며 수도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없는 이들이 오히려 있는 사람들보다 더 불쌍한 이웃 돕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김씨의 이러한 이웃 사랑은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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