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자연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명의 발상지 인도, 20세 여대생 인천 심곡1동본당 구미리내(안나)양이 세계의 문물ㆍ풍물을 보고 보다 깊은 경험을 가지고자 배낭 하나로 인도를 다녀왔다. 인도여행 중 꼬박꼬박 써놓은 기행일기를 바탕으로 한「미리내의 인도이야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배낭여행.
생각만 해도 그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말이었던가!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고, 내게 어렸을 때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배낭하나로 세계를 여행해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선진국들이 아니라 인도, 남미, 멀리는 아프리카까지. 아직 여행자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것을 여행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느님께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까지는 꿈으로만 간직해야 했을 뿐 대학입시라는 현실에 부딪혀 제대로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위로가 되었던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던 미국 하이렘존슨 고등학교에 연수차 한 달간 다녀온 일이었다. 미국을 다녀온 후 내 배낭여행에 대한 꿈은 더욱 더 구체적으로 다져지기 시작했다.
입시준비로 바쁜 하루하루에도 불구하고 나는 틈틈이 배낭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나갔다. 정보 수집뿐만 아니라 배낭여행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로 갖는 공부도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아주 형편없던 어학실력을 키워나가는 일도 해야 했다.
기나긴 입시의 터널을 빠져나와 힘겹게 대학에 입학한 그해 여름에 맞은 첫 방학, 하느님은 애타하는 내가 불쌍(?)하셨든지 기도를 들어주셨다. 드디어 배낭 하나를 둘러매고 동남아로 향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만치 않은 여행준비를 부모님 몰래몰래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모든 수속을 마치고 출국을 며칠 앞둔 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무작정 보내달라고 조른 것도 아니고 내 힘으로 여행준비를 모두 마치고 경비까지 마련해둔 진지한 자세에 결국 부모님도 두 손 다 드시고 허락을 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한 달간의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전에는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게 되었다.
두 번째 겨울방학을 맞아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또 다시 분주히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하랴, 여행수속하랴, 기말시험 치르랴 몸이 두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시간 속에서도 다른 새 세계를 향해 떠난다는 기대감으로 신이 나서 추운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마 그것은 나를 늘 보호해주시는 성모님이 나에게 주신 또 다른 은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은혜 속에 내가 이번에 선택한 곳은 여행경험이 많은 사람들조차 선뜻 가기를 꺼려한다는 유구한 대지의 인도를 비롯하여 설산이 아름답다는 네팔,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 너무도 작고 늙어버려 이젠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마카오 등 일곱 개 나라였다.
1992년 12월18일 오후 6시 아침 일찍 대통령 선거 투표까지 해놓고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계속>
[구미리내의 인도이야기/유구한 대지 인디아를 가다] 1 높이 날고 싶은 갈매기
여행보다 부모허락이 더 힘들어
발행일1993-04-04 [제1849호,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