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은 잘 젖지 않는다. 물기를 잘 빨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오래 입은 옷은 잘 젖는다. 후줄근한 것이 물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깨끗하게 빨아 바짝 말려놓은 옷도 잘 젖지 않는다. 한번 시험해보기 바란다.
그렇다면 새 옷이나 깨끗한 옷, 바짝 말려놓은 옷은 물기를 잘 빨아들이지 않고 오래 입었거나 후줄근해진 옷, 그리고 이미 물기에 닿았던 옷은 물기를 잘 빨아들여 전자는 잘 젖지 않지만 후자는 잘 젖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 신자들은 영세할 때에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그 옷을 끝까지 잘 간수하라는 권고의 말을 듣게 된다. 이 옷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새 옷이었을 때는 혹시라도 죄를 지을까봐 털어내고 닦아내고 하여 감히 죄가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 옷이 되는 것을 어이 막을 수 있겠는가? 항상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좋겠는데 이 옷은 한 벌 뿐이라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즉 빨아 입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시어 미리 그 대책을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고해성사다. 교회는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신자들에게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인 고해성사를 베풀고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 신자들의 판공성사 참여율을 보도한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참여율이 전체 신자의 절반도 안되는 것으로 보도되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맡고 있는 본당의 실정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아직도 자기가 새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빨리 빨아야 할 옷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그냥 입고 다니는 신자가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사순절이 무르익다 못해 끝나간다. 아직도 판공성사를 받지 않았다면 어서 고해실로 달려가야 하겠다. 이번에는 판공성사를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