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받을 대우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 일할 곳까지 쉽게 해결되는 오늘의 수도생활, 문득 이 무상의 은혜가 감지될 때는 주어진 일에 성실한 것 자체로만 족해 하는 나를 한번씩 흔들어 깨운다. 이제껏 가져온 확신의 틀을 낙엽처럼 떨구고 아브라함이 75세에 들었다던『떠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다시금 귀기울여 본다. 의식없이 살다보면 우리는 누구나 다 겉 삶을 살다가 안삶은 요람에서 무덤으로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나의 흔들어 깨움은 언제나 같은 물음들로 시작된다. 『지금 내가 나자신이라고 알고있는 것이 정말로 나인가? 나를 있게 하신 그분이 믿고 희망하신 바 그대로 내가 되어가고 있는가? 내 나이만큼 내 마음도 자랐나?』부모 잘 만나 타고난 좋은 품성 재능 외모 덕분에 얻어진 모든 것들, 수도자인 나는 선배 수도자들 덕분에 받는 사회적인 신뢰까지 그야말로 순전히 그분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이 천혜의 것들을 훌훌 벗고나면 진짜 나도 남도 몰랐던 내 속 모습이 완연히 드러난다. 여전히 미운 사람은 밉고 손해보기 싫고 잘나 보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원색찬란한 유아기적 이기심에 묶여 발버둥치는 진짜 내 안모습이 보인다. 이 이기심을 벗어나지 못해서 언젠가는 내 속모습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사라져버릴 저 겉삶들에 그리도 연연했던가 싶어 화들짝 깨어난다.
대부분의 인성교육은 다만 인간을 세련된 이기주의자로 바꿀 뿐이지 원초적인 이기심에서 구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남이 부러워하는 직위를 얻었어도 본심은 유아기적 이기심에서 한치도 더 자라지 못한 겉늙은「저능아」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아포기의 훈련장인 수도 생활에서도 이따금씩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일보다 남으로부터 존경받는 수도자가 되는 일에 더 마음을 쓰는 이기심들이 보인다. 자신을 자주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나는 어느새 무엇이 되는 일에 치중하고 만다. 더 늦기전에 그분처럼 조건없이 사랑하는 일에 마음을 쓰면서 겉삶보다는 안삶을 가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