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보가 가로등 밑에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찾으십니까?』
바보:『낮에 잃어버린 반지를 찾습니다』
행인:『반지를 여기서 잃어버렸습니까?』
바보:『아니오. 저쪽 숲에서 잃어버렸습니다.』
행인:『그러면 잃어버린 곳에서 찾아야지, 왜 여기서 찾습니까?』
바보:(벌컥 화를 내면서)『이런 바보같은 양반아! 이렇게 환하고 평평한 곳에서도 찾기 힘든데, 어떻게 어둡고 질척한 숲 속에서 찾으란 말이오?』하면서 오히려 행인을 꾸짖었다.
바보는 잃어버린 반지를 쉽게 찾고싶었다. 환하고 판판한 아스팔트 위에서 힘 안들이고 찾으려했다. 어둡고 컴컴한 숲 속에 들어가기 싫었고, 모기가 들끓는 질퍽한 곳에서 찾기싫었다. 반지를 찾으러 숲 속에 들어갔다가는 가시에 찔릴지도 모르고, 모난 돌멩이에 발을 다칠지도 모른다. 옷을 더럽힐지도 모르고, 모기나 뱀에 물릴지도 모른다. 그런 고통 당하지 않고, 힘 안들이고 반지를 찾고 싶었기에 환하고 평평한 가로 등 밑에서만 열심히 두리번거린 것이다.
인생을 힘 안들이고 쉽게만 살려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힘들고 더러운일, 궂은 일을 싫어한다. 청소년도 가정주부도 자꾸만 평한 것만 찾는다. 사업가 장사꾼들도 불의를 감행해서라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불로소득이 없다 두리번거린다.
이런 안일주의가 신앙에까지 스며들어, 힘 안들이고 주님의 제자가 되려하고, 너무 쉽게 천당에 가려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가14, 27). 십자가의 고통없이는 주님의 제자되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어둡고 질척한 숲 속에서 찾는 고통없이는 잃어버린 반지를 찾을 수 없듯이 말이다.
바보가 엉뚱한 곳에서 반지를 찾으려했듯이 우리도 엉뚱한 곳에서 주님을 찾으려 하고 있다. 바보가 고통없이 너무 편하게 반지를 찾으려했듯이 우리도 고통없이 주님을 찾으려 했고, 힘 안들이고 주님의 제자되려했다.
본당 신자들이 본당의 궂은 일에 보다 앞장 선다면 본당신부가 좀더 편하겠는데… 본당신자들이 본당의 모든 일에 대해 자진해서 십자가를 진다면, 본당 신부가 이토록 많은 자질구레한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히 지낼텐데…. 아이쿠! 본당신부까지 편한 길을 찾아서야 되겠는가? 아이쿠! 나도 어느새 편한 병에 걸려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