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임이 바뀌어 5년 전 안동에 왔다. 안동은 다른 교구에 비해 농촌을 배경으로 있는 교구여서 그런지 농민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였다. 농촌공소를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게 되면서 길을 걸을 때나 버스를 탈 때 마다 눈에 띄는 모습이 농민들의 모습이다. 차창밖을 내다보는 야윈 얼굴들, 거칠어진 손마디, 요즈음은 병에 찌든 농민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장보러 나온 바구니에 담긴 소주병이 땅과 한평생 살아온 그들의 시름을 달래주는가 보다.
그래도 장날 버스에서 온갖 무거운 물건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그들의 모습은 비록 고달파보일지라도 나의 눈에는 소비주의와 편리주의에 물든 도시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보인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어 주면 무척이나 감사해 하며 총총걸음으로 시장을 향해가는 그들의 모습. 그들이야말로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협력자이다. 그러나 정작 방문하여 그들의 삶을 가까이 보면 궁핍하기 짝이 없다. 마지못해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좌절감이 그들의 삶안에 깔려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없는 농촌, 땅도 사람도 병들어 있는 농촌을 살리는 길은 없을까?
어느 젊은 여성들을 위한 모임(신부대학)에 가서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각오를 하면서 아가씨들에게 농촌으로 시집을 가도록 권유했더니 어느 아가씨 왈 『제가 가고 싶어도 우리 엄마가 말립니다』 그 아가씨는 농촌 츨신이었다. 나는 요즘 도시와 농촌이 함께 연대하여 농민은 도시생활자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도시생활자는 농민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생명의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나는 농촌에 시집 온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요한 15, 1)라고 설파하신 분을 내 평생 반려자라 믿고 수도생활을 택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나도 자연의 순환 이치를 늘 생활 속에 깨닫고 자연과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생명의 이치, 공생의 이치를 깨닫는 수도생활을 하고 싶다.
농부이신 아버지의 참모습을 땀흘리는 농민에게서 찾아내고 생명을 기르는 농민들이 진정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