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해가 기웃기웃 질 무렵, 나는 깨끗이 씻은 후에 엄마의 고무신을 신고 어른들이 산보하는 것처럼 동네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친구들이 바닷가에서 주은 조깨껍질을 보여 주면서 자랑을 했다. 그 조개껍질은 너무나 예뻐 보였다. 그걸 갖고서 소꼽장난을 하면 아주 재미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래, 나는 너희들보다 더 예쁜 것을 더 많이 주워 올거야!」라는 희망과 기쁨이 나를 바닷가로 줄달음치게 했다.
우리 집에서 바다는 꽤 멀었다. 그러나 엄마의 고무신을 바꾸어 신을 만한 순간의 여유도 나에게는 없었다. 신발은 자꾸 벗겨졌지만 나는 조개껍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바닷가를 향해 혼자서 결사적으로 달려갔다.
바닷가 위쯤으로는 사람들이 오고가고 했지만 바다 모래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다는 넓었고 혼자서 다 차지할 수 있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참이나 정신없이 조개껍질을 주웠다. 포켓에 가득히 넣고 두 손 가득히 쥐었다. 「이젠 됐다!」하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해는 져버렸고 주위는 컴컴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서있었던 주변만 조금 높게 솟아 있었을 뿐, 소리 없이 온 사방에 물이 들어와 있었으므로 나가야 하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바다를 보면서 나는 무서움에 떨었다. 「바다에는 물귀신이 있다」는 소리들이 귀에 쟁쟁거렸다. 그러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주위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겨우 한발자국을 건네어 디뎌 보니 발이 모래 벌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엄마아一!」하고 막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는데 문득 엄마말씀이 떠 올랐다.
『얘야! 네가 무섭거나 위험한 때가 있으면 항상 성호를 그어라. 하느님께서 너를 돌보아 주실 것 이란다』 그때 나는 아마 십자가를 백번도 더 넘게 그었을 것이다. 십자성호만을 부지런히, 쉴새없이 그은 것만 생각이 나는데 어떻게 무슨 힘으로 그 바다 둑을 넘어 왔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우리 동네를 향하여 걷고 있었다. 고무신은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지 맨 발이었으나 아픔도 부끄럼도 없었다.
동네는 깜깜하기만 했고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동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르다가 지쳐 밤늦게 서야 돌아왔다. 그때 차례로 부둥켜안으며 많이도 울고 웃고 했던 기억이 난다.
욕심때문에 그렇게 고생은 했지만 그때 성호경의 큰 힘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이 두고두고 고마웠다. 그때는 전혀 의미도 모르면서 무조건 성호를 그었지만 지금은 십자성호를 그을 때 마다 깊은 의미를 나에게 안겨 준다. 나를 위해 아들을 바치신 성부(聖父). 나를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성자(聖子)의 그 참 사람 영원히 나를 성심 (聖心)과 하나가 되도록 묶어주는 성신(聖神) 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하신 증거가 이 십자가에 서려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