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무지 찌는 듯한 살인더위 속에 나 혼자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데 누가 남을, 그것도 몸이 불편한 사람의 시중을 들어주겠어? 꽃동네를 가던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마 내 주위의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말이 쉬워 사랑의 실천, 봉사이지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3박 4일간의 꽃동네 생활. 처음엔 정말 집에 갈 날이 까마득했다. 그저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처음으로 일한 나의 일터는 본동 주방이었다. 본동 식구들의 밥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내가 열심히 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초라한 주방. 파리들이 우글우글대고 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었다. 우거지를 썰면서 손이 쪼그라들고 돼지고기도 만지지 못하는 내가 쇠고기 기름을 썰고, 참 힘든 일이었다.
이튿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병원이 나의 일터였다. 안나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일을 배웠다. 7시부터 식사 배급을 시작해 설겆이를 마치고 모두들 지친 얼굴로 아침식사는 거르고.
병원으로 가서 계속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일하고 7층 정리, 계단 청소 등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손이 붓고 배가 고팠다. 환자들의 식사를 도우며 배가 꼬르륵, 침이 꿀꺽! 점심은 2인분씩을 해치웠다.
3일 동안 환자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교양 있고 얌체인 전영남 할머니. 다리를 다쳐 움직이시지는 못하지만 소변훈련 중! 매일 집에 가야 한다는 힘이 센 성복녀 할머니. 친한 사람 이외엔 때리는 취미(?)가 있는 명자 아줌마.『안 먹어요. 우유 주세요. 까까 주세요』철승이의 마른 몸매는 소말리아 아이들보다 조금 더하다. 손을 꼭 잡고 꼭 다시 오라던 수정 언니의 말이 귀에 맴돈다.
병실을 돌아나오는 길이 왜 이리 길던지 정말 나오기가 싫었다. 처음의 생각은 사라지고, 모두에게 더 잘 해줄 걸 하는 생각만 남았다.
처음의 생각과 마지막의 생각이 왜 이리 다른지 정말 내 자신이 부끄럽다. 다른 친구들, 다른 성당 친구들보다 내 자신이 수그러든다.
자기 혼자 결심으로 온 친구들도 있는데 억지로 와서 짜증이나 내고, 언제 내가 이런 곳에 올 수 있을까? 후회스럽고 안타깝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걱정이 됐다. 주사 바늘을 뽑지는 않는지, 울지는 않는지, 밥은 거르지 않는지, 나에겐 한 가지만이 가슴 속에 남는다. 제발 주사 바늘 좀 뽑지 말았으면. 꽃동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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