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부끄러움 일이지만 우리 친척들에게 남아 있는 나의 모습은「고개숙이지 못하는 애」이다.
항상 도도하고 잘못하고 서도 스스로 용서를 빌지 못하는 성깔 못된 아이의 모습을 그들은 자주 떠올린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무슨 자랑이나 되는양 자만심 많은 내 모습을 보물처럼 생각했고 나이가 들면서는 내 어깨를 너무도 무겁게 하는 짐으로서 뼈아픈 체험을 하게 했다.
잘못해놓고도 잘못했다고 빌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먼저 인사하면 입이 꼭 붙어버리는 줄 아는 사람이 어떻게 수도자가 되었는지 모두 의아해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이 더 의아하게 느껴진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건없이 남의 의견을 받아 주고 자신들 천하게 보며 남을 추켜주는 사람이 지닌 덕성인가? 「고개 숙이지 못한 자」로 살아온 내가 감히 겸손에 대해 언급할 자격도 없지만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적임자인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교만한 내 모습이 싫어 겸손의 덕을 닦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던 때가 있었다.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나폴레옹같은 신념으로.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찾기 위해, 내 의견을 포기하기 위해, 내 자신을 비천하게 보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 불어오는 씁쓸한 바람소리를 들었다.
『이게 아닌데… 난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하는 안타까움이 자리잡았다.
겸손과 인내를 같은 실에 꿰어놓고 참는다는 것을 앞세우다보니 오히려 나는 2가지의 인격을 지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 마음은 전혀 안 그러면서 겉으로만 긍정하고 미소짓고 칭찬해주는 사이에 내 스스로 자신을 상처입히고 있었다. 때때로 나의 느낌이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상대방이 다칠까봐 망설이다 가는 인내의 보자기로 덮어버리곤 했다.
덮여진 느낌들이 덮여진 채로 있으면 좋으련만… 그 가여운 친구들은 쉴 곳을 찾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해버리곤 했다.
겸손이란 무엇인가?
사도 바오로처럼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조차 감싸고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이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약하고 분노하고 변덕스럽고 사랑스럽고 열정적인 모습 그대로의 나를 먼저 아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필진이 바뀝니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김엠마누엘라(예수성심전교수녀회) 이사베리아 (그리스도교육수녀회) 이선자 (전교가르멜수녀회) 정윤희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수녀님들께서 수고 해주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