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제1101 야공단 예하 제133대대와 제907중대 신자 장병들의 대부 현상학(프란치스코)씨.
이들 부대 지휘관들뿐 아니라 신자 아닌 군 장병들도 그를 알아볼 정도로 유명한 유지 아닌 유지이다.
현상학씨가 이들 공병부대 신자 장병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서울을 떠나 경기도 마석으로 옮겨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한 88년부터다.
현대그룹 회장단 수행비서로 남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 개인사업에 손을 댄 현씨는 그만 사업에 실패하고 가산을 탕진하게 됐다.
심한 정신적 충격과 함께 전 재산을 잃은 현씨는 사글세 방을 전전하다 마석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야만 했고 생전 처음으로 50이 다 된 나이에 고된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
손에 익지 않은 농사일과 정신적 방황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에 귀의키로 결심한 현씨는 마석본당 예비자 교리반에 나가게 되었고 87년 2월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다.
영세 후 서울대교구 신앙학교를 졸업한 현씨는 신앙에 귀의한 이후 정신적 안정과 함께 자신이 벌인 유기질 비료공장 사업이 차츰 기반을 잡게되자「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만큼 남에게 베푸리라」고 결심했다.
이런 결심과 함께 성당에서 나름대로 봉사할 일을 찾던 현씨는 마석성당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공병대 장병들이 성당에 나와 겉도는 것을 보고 이들을 예비선교해 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현씨는 88년 여름부터 우선 성당에 처음 나오는 장병들을 자세히 안내하고 미사를 마치면 군인들이 부대 점심시간을 놓치기에 밥을 지어 이들을 먹이는 일부터 시작했다.
본당 신부의 협조를 받아 성당에서 밥을 짓기도 하고 자신의 집으로 이들을 데려와 점심을 먹이기도 했다. 현씨는 또 군 생활에 잘 적응치 못하는 장병들의 아버지가 돼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가 하면 함께 당구장에 가 당구를 치거나 집에서 성인전 비디오를 보는 등 잠시라도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매주 자비로 나가는 적잖은 돈이지만 이들을 위해 쓰는 것은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고 현씨는 말한다.
88년 여름에 시작 89년 1월에 6명을 영세 입교시킨 현씨는 그 후 용기를 얻어 예비자 교리반 장병들을 봉고차로 실어나르는가 하면 대대장의 협조를 받아 부대 통근 차량을 배치 받아 주일미사에 군인들을 참례시키고 있다.
6~7년 동안 3백여 명의 군인들에게 신앙을 갖도록 권면하고 그 중 50여 명을 영세 입교시킨 현씨는 현재 관할 군종신부의 도움으로 희망자에 한해「통신교리」를 시키고 있다.
공병부대 장병들로부터「아버지」로 불리는 현상학씨는『자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신자들이 있어 서운한 감도 많았지만 신앙을 가진 이후 군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성소라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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