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던 일들과 2살이 적은 처남에게『나는 성당에 안 나가도 선택 받은 사람이야. 튼튼한 빽을 갖고 있으니까 천당에 갈 수 있단 말이야.』라고 농담을 했던 일이 주마등처럼 생각이 났다. 나는 자주 거울에 비쳐진 굳어버린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외쳐대곤 하였다.『하느님 나 좀 건강을 찾게 해주세요. 이 추한 내 꼴을 주님 앞에 보이고 싶지 않아요.』
마비가 된 지 4개월 정도 되었을까 입가에 약간의 신경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살 속 저 깊은 곳에서 움직임이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지 2개월쯤 되었을까, 눈에 띄게 회복이 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수천 번도 더 외쳐대었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길에 아파트 정문 앞에 처가 다니는 사상성당에서 예비자 모집한다는 벽보가 붙었다. 이젠 더 이상 도망 못가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미소를 슬며시 띠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세 딸들과 처가 합동으로 반 협박 또는 애걸을 하며 성당에 같이 나가자고 졸라댔다.
나는『생각 좀 해보고』라고 대답했다. 처로서는 이 대답이 내가 많이 후퇴했구나 라고 느꼈나 보다 몇 일 지나자 낯 모르는 사람들의 방문이 있었다. 같은 아파트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성당에 나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약속은 했어도 하루하루 보내면서 수십 번 번복했었다. 그러면서 마음에 안 들면 그만 두리라는 조건을 마음 속으로 간직하며 7월 마지막 목요일 성당으로 첫 발을 들여놓았다.
내가 보았던 명동성당이나 유럽의 여러 성당보다 훨씬 작고 아담한 사상성당은 가난한 동네 한 쪽에 있어서 돋보였다. 낯 설고 어색한 나를 성당 교우들이 한결같이 환영해 주었다. 10년이 훨씬 넘었을 것 같은 강당 건물에 들어갔다. 책상 위에 간단한 다과와 30대 정도의 신부님과 수녀님 두 분 또 나와 같은 예비자들이 강당을 꽉 메웠다.
근엄하고 엄숙하리라 생각했던 신부님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하얀 이빨을 드러내보이며 자주 웃었다. 웃을 때마다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잘 생긴 편 하곤 거리가 좀 먼 젊은 박창일 신부님이었다.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그는 나의 마음의 눈을 뜨게 했다. 어느덧 목요일이 기다려지고 그날이 오면 맨 앞 좌석에서 신부님 강론 듣는 것이 나의 최대 즐거움이 되었다.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예수님은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며 우리가 교회를 찾은 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아! 그때 그 느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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