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리스따들은 꾸르실료의 기본정신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그 분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누룩이 돼야 합니다.』
43년 전 꾸르실료를 창시한 7명중 한사람인 에두아르도 보닌 씨가(75세)가 24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된 제7차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꾸르실료 회의와 한국 꾸르실료 25주년 기념 전국 울뜨레야에 참석차 내한, 꾸르실리스따로서의 정신자세를 이같이 강조했다.
『꾸르실료와 혼인을 했다』고 할 만큼 결혼도 하지 않고 전 세계 꾸르실료 발전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보닌 씨는 또『꾸르실료는 교육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르실료 후 세상의 핵으로서 복음을 전파하는 올바른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72년 한국 방문에 이어 20년 만에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그동안 한국교회와 꾸르실료가 많은 발전을 이룩해 꾸르실료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중의 하나가 됐다』며『한국의 꾸르실리스따들이 앞으로도 한국교회 발전과 복음화에 많은 기여를 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전망했다.
2차 세계대전과 내란 등으로 스페인이 황폐해 있을 때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의 빨마지역 신자들과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의 신앙을 부흥시킬 목적으로 꾸르실료를 만든 이래 현재까지 약 2백만명의 꾸르실리스따를 탄생시켰다는 보닌씨는 꾸르실리스따들의 희생과 노력에 의해서만이 꾸르실료 운동이 발전되고 향상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1949년도에 처음 꾸르실료를 실시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5년전인 1944년부터 이 운동이 잉태되기 시작했다고 밝히는 보닌 씨는 그 당시 함께 꾸르실료를 창시했던 7명중 현재는「루잔」과「리오또로」등 4명만이 생존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특히 보닌 씨는 울뜨레야를 가리켜『울뜨레야는 꾸르실리스따들이 서로 만나서 기쁨을 나누고 그때의 감격을 되새기는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보통『미사와 함께 이뤄지고 있는 울뜨레야의 잘못된 점을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지역특색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는 꾸르실료 방법에 대해『원래의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역에 맞게 토착화를 시켜가는 방법은 괜찮겠지만 큰 변화를 주어서는 곤란하다』며 꾸르실료 운동의 일관성을 위해서라도 한지역의 독자적인 변화를 삼가 달라고 주문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몬드공장을 경영하느라 꾸르실료 운동에 전념하지 못했는데 이제 모든 것을 잊고 꾸르실료 활동에만 매달리게 돼 기쁘다는 보닌 씨는 하느님이 주신 건강한 몸으로 세계 곳곳을 돌며 꾸르실료 전파에 남은 여생을 모두 바칠 각오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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