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망신고서와 둘째 아이의 출생신고서를 함께 써야 했던 슬픔과 고통을 한 편 한 편의 시로 승화시킨 한 여인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라는 단 한 권의 시집으로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우뚝 선 강민숙씨(32ㆍ보나).
『둘째 아이 출산을 이틀 앞두고 일어난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은 제 가슴에 깊은 그리움을 새겼습니다. 오랜 투병으로 사망했다면 이 만큼의 그리움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편에 대한 이 깊은 그리움이 시를 쓰는 데, 두 아이를 데리고 험난한 세상에 홀로 서는 데 오히려 힘이 된 것 같습니다』
92년 7월 여름, 7년 전 7월에 만나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는 열애 끝에 결혼한 남편은 죽던 그날도 태어날 지환이의 기저귀를 모두 빨아주며『보약 한 재 지어다 주마』하던 자상한 모습 그대로였다. 자정이 다 되도록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강씨는『교통사고로 남편이 사경을 헤맨다』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당신은 칠 월의 하늘 아래/ 맨드라미 꽃송이처럼 붉게 타오르다/ 어느 바람에/ 꺾이고 말았습니까/ 당신은/ 철부지 재환이와/ 눈도 못 뜬 지환이를 두고/ 끝내 저승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실밥도 풀지 못한/ 나는/ 병원에서 끌려나와/ 배를 움켜쥔 채/ 두 발로/ 당신을/ 꽁꽁 묻어야 했습니다/ 여보/ 가시는 그 길을/ 당신은 아시는지요』(새벽 안개를 헤치며)
남편이 죽기 전에 새로 태어날 아기를 보여주기 위해 수술까지 받았던 강씨는 끝내 남편에게 지환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두 아들과 남편의 입원비와 자신의 수술비를 치르고 남은 1백만 원이 전부였다.
『신앙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하느님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느님은 나의 원망과 항변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10개월 동안 집에 틀어박혀 나의 팔자와 새로 태어난 아이의 기구한 운명을 비관하며 자살과 단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 사이를 오갔지요』
평소 시를 쓰고 문학수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강씨였지만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는 자신의 직업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식당, 옷가게, 보험회사 등을 전전하며『생각하기도 싫은 비참한 생활』을 했던 그는 한 친구에게서 어린이 세계 명작 소설을 써 보라는 제의를 받은 후 그제서야 자신이 시를 쓰는 문학인임을 깨닫게 됐다. 간호사였지만 문학 공부를 즐겨했던 그녀는 이미 82년「문학동인」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시인으로「공사장」등 참여시로 주목 받던 신인이었다.
『지난해 추석날 밤에 잠을 자는데 남편이 꿈에 나타나 시집을 제게 놓고 가더군요. 그때부터 일기장에 써놓았던 저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시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4개월 정도 밤낮없이 책상에 앉아 썼던 시 중 86편을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시집이 발간된 지 7개월 만에 10만 부가 발매되는 등 그녀에겐 난생 처음 겪는 듯한 기쁜 나날이 시작됐다.
『하느님께서 이젠 더 이상 나에게 가져갈 것이 없을 정도로 나는 정말 가난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나에게 무언가를 또 가져가려고 하셨습니다. 시집을 발간한 후 큰 아이가 갑자기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급속도로 시력을 잃어갔지요. 더 이상 나에게 가져갈 것이 없다는 나의 교만을 하느님은 기어이 꺾고 마셨습니다』
그녀는 큰아이가 점점 시력을 잃어가면서 자신이 볼 수 있다는 것, 건강하다는 것, 아이들이 있다는 것, 시를 쓸 수 있다는 것 등등 자신이 가진 엄청난 은총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남편 죽음 이후 처음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렸다.
『지금 재환이의 시력은 거의 회복되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지요. 그동안 너무 나만의 고통에 사로잡혀 나의 이웃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늘에선 내 이웃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시를 써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슬픔 체험과 홀로서기의 경험을 고아원, 구로공단, 병원, 여성단체 등지에서 강의하는 그녀는 요즘 내년 3월쯤 발간될「가슴으로 불러보는 당신」을 집필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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