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이국 땅 한국에서 선교해 왔으며 6ㆍ25동란시 납북된 빠리 외방전교회 신부 13명중 최후의 생존자인 「나의 북한 포로기」의 저자 구인덕(첼레스띠노ㆍ불란서명 셀레스땡꼬요스)신부가 3월3일 수원 경로수녀원에서 숙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86세.
구 신부는 1908년 11월7일 프랑스 몰레옹 지방에서 출생, 1933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에 입국, 경기도 안성과 충남 논산 등지에서 사목을 하다가 1936년 결핵으로 귀국했었다. 그러나『한국인 사제가 되고 싶다』는 염원아래 6ㆍ25 동란 직전인 1950년 4월 다시 입국, 서울 대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6ㆍ25동란을 맞았다.
1950년 7월16일 인민군에 체포된 구 신부는 교전 37개월중 33개월을 공산치하에서 보냈으며 압록강변에서부터 중강진까지 이어지는 「죽음의 행진」을 체험해야 했다.
구 신부는 생전에 그때의 상황을 술회하며 『북한 신자들이야말로 한국의 새로운 순교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1953년 4월17일 평양에서 석방되어 그해 5월 프랑스 본국으로 송환된 구 신부는 전쟁의 슬픔과 공산치하에서의 종교탄압을 「나의 북한 포로기-죽음의 행진에서 아버지의 집으로』를 저술했으며 이 책은 전쟁의 실상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삶을 증거했다는 공로로 195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 한림원)상을 수상했다.
이후 구 신부는 한국을 잊지 못하고 1955년 7월31일 재입국, 안동대목구장으로 교구 설립 기반을 조성하고 안동교구 부주교를 지냈으며 그리스도 교육 수녀회를 룩셈부르크로부터 한국에 진출시켰다.
이후 고령으로 자진해서 안동을 떠나 한국 순교 복자수녀회와 수원 경로수녀원에서 거주하던 중 이 땅에 묻힘으로써 염원하던 「한국인 사제」가 됐다.
한편 3월6일 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박석희 주교 주례로 집전된 장례미사에서 두봉 주교는 강론을 통해 『평생 주님을 찾으신 분이 주님께로 돌아갔다』고 말하고 『구 신부는 한국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분으로써 대단한 선배요 대단한 선교사요 대단한 신부』였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박석희 주교 두봉 주교 경갑룡 주교를 비롯 안동교구 사제단과 성직ㆍ수도자 및 평신도 5백여 명이 참례, 애도의 뜻을 표했으며 구 신부의 유해는 안동 안기동 천주교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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