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고 싶다. 날아다니는 수녀가 되고 싶다. 정말이지 요즈음 같은 교통지옥에서 벗어나 훌훌 어디론지 날아다니고 싶다. 그래서인가 꿈을 꾸어도 날으는 꿈을 많이 꾸고 있다. 쓰고 있는 모자의 깃을 「탁」치는 순간 나는 어디든지 날으는 수녀가 되는 것이다.
치마를 펄럭이며 손과 팔을 휘저으면서 뒷산인 계양산을 옆집 갈멜수도원을 옥상을 앞산을 때론 아주 엉뚱하게 우주를, 때론 끝도 보이지 않는 망막한 바다 위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가는 잠을 깨곤 한다. 물론 그 순간 꿈도 깨고…
그래서인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은 내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얼마 전에 전철을 타려 아래로 아래로 땅굴승객이 되어 숨막히는 전철에 오르니 이건 자유의지를 전혀 발휘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그것도 푸시맨(Push-Man)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타고나서도 그 고행이란-내게 있어서 고행이란 바로-그 어떤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정도의 절박함이었다.
20여 분을 옴짝달싹도 못하고 내리니 팔이 펴지지 않아 지나는 사람에게 팔 좀 아래로 내려달라고 SOS.
그날 밤 나는 얼마나 꿈속에서 실컷 날았는지….
내가 교단에 있을 때 늘상 입버릇처럼 하던 「공부하게 하기 위한 충고」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가 원하는 사람이 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린 너무 한계가 많다. 더구나 될 수 없는 것이 되려 할 때의 한계란….
난 날으는 수녀가 되고 싶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처럼 나 역시 그분의 사도적 수행에 있어 막힘없는 자유로운 수녀가 되고 싶다.
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 누구든 나와 돌아다녀야 생명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거리를 쏘다니는 인파속에, 도와도 도와도 끝이 없는 가난의 굴레 속에, 배워도 막혀버린 이기적인 가슴속에, 형식을 중시하다 하늘을 잃은 교회 속에,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막힘없이 날으고 싶다.
머지않아 사람들은 날으는 수녀를 보게 될 것이다. 언제든 비상의 계획을, 꿈과 확신을 가슴 가득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