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절과 광복절이 다가오면 저 북경땅 만주벌판에서 들려오는 독립투사들의 피끓는 함성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때의 일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일제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6ㆍ25때는 반공투쟁에 앞장서며 3남매 뒷바라지로 푸른 대나무처럼 살아온 김옥경(80세ㆍ로사리아ㆍ수윈교구 광명본당) 할머니.
구한말 강원도 춘천에서 군수의 막내딸로 태어난 김 할머니는 「친일파의 딸」이란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따돌림 때문에서라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바쳐 일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사촌언니의 친구인 박순천 여사의 주선으로 일본에 건너가 북해도 고등잠사학교를 관비생(장학생)으로 마치고 돌아온 김 할머니는 만주인들의 우리 동포 학살소식을 전해 듣고 동지를 규합, 춘천에 거주하는 중국인 습격사건으로 6개월씩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만주의 용전, 목단강성, 무순 등을 중심으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사상을 심어주는 등 활동을 해오다 왜경에 의해 총살형을 받기도 했으나 해방이 되어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김 할머니는 해방 후 대한 부인회 강원도 회장, 대한 청년단 강원도 단장으로 재직한바 있으며 4ㆍ19 직후 보사부 부녀국 생활계장으로 근무하며 3남매를 대학에 진학시키고 자신도 48세의 나이로 고려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맹렬여성이기도하다.
『해방 후 영세를 하며 하루에 2가지 이상 보람된 일을 하겠다고 성모님과 약속했다』는 김옥경 할머니는 6ㆍ25직후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본당을 봉헌한바 있다.
또한, 냉담자를 방문, 회두시키는 한편 전교에도 온갖 심혈을 기울여 지역복음화에도 앞장서고 있는 김 할머니는 현재 27명의 자녀들에게는 영적어머니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으며 폐품수집과 집필활동으로 얻어진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하는 등 모범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달하는 봉헌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김옥경 할머니는 어느새 평범한 이웃집 할머니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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