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때 개울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 뒤로 물을 무척이나 무서워했지만 차츰 공포증이 사라져 바다에서 튜브를 타며 수영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바다에 휴가를 갈 때마다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는 선생님들이 나타났고 나 역시 수영을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나는 지금도 수영을 하지 못한다.
나는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수 없었다. 물 속으로 머리를 넣고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지 못했으니까.
수영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은 나의 어리석음에 혀를 내두르며 설득하고 협박하고 강제로라도 시키려 했지만 믿지 못하는 나를 설득시킬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수영을 배우지 못한 안타까움이 항상 있었지만 튜브를 타도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 더 이상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살면서 수영을 배우지 못한 내 자신의 두려움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나 자신을 완전히 쏟아버리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가슴에 걱정이 산처럼 쌓여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마지막 순간에 가면 달팽이처럼 내 속으로 숨겨버린다.
내 고통에 조언을 할까봐, 내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봐, 나를 나약한 인간이라고 판단할까봐 나는 나 스스로 처방까지 얘기한다.
「나는 지금 이렇지만 이렇게 해결했다. 이렇게 해결할 것이다」 라고.
그럼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맞장구치는 것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끝냈다. 그런 친구들을 보는 내 심정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고독함 이었다. 나는 늘 고독하고 혼자있는 느낌이었다. 그 고독함이 이해받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알았지만 실상은 누구도 믿지 못하는 내 불신에서 온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알았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들어앉아 누군가 들어오기를 기대했지만 내가 열기 전에는 결코 열릴 수 없는 그 문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함께 있어야하는 수도생활,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공동체 생활 안에서 나는 얼마든지 독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요즘 나의 독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실행하고 있다.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한다.
두렵고 불안한 내 모습을 이웃에게 그대로 드러내보이며 그들을 내 안으로 초대하고 내가 기꺼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며 삶을 나누고 있다.